[토요판] 혼수래 혼수거 
15.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
1889년 빈센트는 귀에 붕대를 감은 모습의 자화상을 2점 남겼다. 반 고흐 미술관 제공
1889년 빈센트는 귀에 붕대를 감은 모습의 자화상을 2점 남겼다. 반 고흐 미술관 제공

“나중에 사람들은 반드시 나의 그림을 알아보게 될 것이고, 내가 죽으면 틀림없이 나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그의 예언이 옳았다. 지난주 서울 시내의 한 도서관 검색대에서 ‘반 고흐’라는 키워드를 넣었더니 80여권의 책이 검색됐다. 책이 ‘너무’ 많았다. 도록, 소설, 전기, 여행기, 편지 선집, 그래픽 노블까지. 주제도 상당히 다양했다. 도대체 귀는 왜 잘랐을까? 스스로 잘랐을까? 귓불만 자른 걸까, 귀 전체를 자른 걸까? 빈센트의 죽음 자살일까, 타살일까? 그의 정신질환은 간질이었을까, 조울증이었을까, 메니에르병(청각 질환)이었을까? 심지어 그가 왼손잡이였는지, 오른손잡이였는지까지 분석한 내용도 있었다. 사실 이 모든 ‘썰’을 초래한 것은 빈센트 자신이다.

‘기록광’이었던 빈센트는 생전에 끊임없이 편지를 썼다. 지인들과 약 900여통의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그 가운데 668통이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것이다. 네 살 아래인 테오는 그의 평생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어 무명의 화가였던 형을 평생 정신적·물질적으로 지원했다. 1872년부터 주고받은 이들의 편지에는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 섬세했던 빈센트의 성정부터 예술가로서의 삶과 철학, 작품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편지는 고갱과의 관계에서부터 정신병원에서의 생활, 여자들과의 관계까지 일기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자세하다. 빼곡한 일화들은 훗날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해석 거리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37년의 삶은 짧지만 강렬했다. 청년 시절 그는 미술상, 교사, 전도사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방황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27살 때의 일이다. 뒤늦게 독학으로 시작한 탓일까. 작업에 대한 집념이 어마어마했다. 1880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0년 동안 그가 남긴 작품의 양은 2천여점에 달하며, 생을 마감하기 전 70일 동안 머물렀던 오베르에서 한 달 동안 무려 4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1882년 그는 테오에게 “예술은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해. 어떤 상황에도 멈추지 않고 일하며 계속 관찰하는 거야. 끈질긴 노력이란 무엇보다도 꾸준한 작업을 의미”한다고 썼다.

자신이 결혼하고자 했던 여자 시엔을 그린 반 고흐의 작품 〈슬픔〉. 반 고흐 미술관 제공
자신이 결혼하고자 했던 여자 시엔을 그린 반 고흐의 작품 〈슬픔〉. 반 고흐 미술관 제공
세상과 불화했지만 그는 자신을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한 남자, 정열적인 평범한 남자일 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쉽게 사랑에 빠졌고 많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행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가난하고 나이 든, 삶이 고달픈 ‘거리의 여자들’을 동정하고 사랑했다. 특히, 임신한 몸으로 거리에서 몸을 팔던 시엔(Sien·클라시나 마리아 후닉)과 그녀의 5살짜리 딸을 집에 데리고 와 돌봤으며 나중에 결혼도 하려 했다. “그것이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테오에게 스스로 자신의 최고 작품이라 말하기도 했던 대표작 <슬픔>(1882)도 나체로 웅크린 시엔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당시 화가들이 표현했던 여성들의 아름다움, 성적 매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슬픈 것 같지만 늘 기뻐하는 삶”을 말했던 빈센트에게는 세상 사람들 눈에는 구별되지 않는 그만의 색과 아름다움이 있었나 보다. 돈 매클린이 그의 곡 <빈센트>(1970년)에서 노래했듯, “이 세상은 당신만큼 아름다운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었”을 수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