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인터뷰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깜깜한 데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는 가로등 아래를 맴돌며 계속 열쇠를 찾는 시늉만 하는 격이죠. 낡은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한테는 얘기를 해도 소화를 잘 못합니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우리나라 진보와 보수 모두 매우 ‘국가주의’적이라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i.co.kr
“깜깜한 데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는 가로등 아래를 맴돌며 계속 열쇠를 찾는 시늉만 하는 격이죠. 낡은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한테는 얘기를 해도 소화를 잘 못합니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우리나라 진보와 보수 모두 매우 ‘국가주의’적이라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i.co.kr

▶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내 증권사 22개 가운데 부정적 리포트를 낸 곳은 한화투자증권이 유일했다. 당시 주진형 대표이사에겐 삼성과 한화 쪽으로부터 여러 통로로 압력이 가해졌다. 지난해 12월 열린 최순실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그의 증언에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주진형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식당에 가면 입구 쪽을 등지고 앉아요. 알아보고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고, 밥값을 대신 내겠다는 사람도 있어서….”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그는 이미 유명인사가 돼 있지 않던가.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2013년 9월~2016년 2월)를 지낸 주진형(58)씨는 지난해 12월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참고인으로 나왔다. 그의 증언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재벌 계열 증권사 전 대표의 입에서, 게다가 그 재벌 기업 총수가 눈앞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기본적으로 조직폭력배들이 운영하는 방식과 똑같아서….”

“작년에 삼성물산 합병 발표를 봤을 때 저렇게 돈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치사한 짓을….”

그는 국회의원 앞에서도 굽힘이 없었다. 한화증권 대표직을 연임하지 못한 게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냐고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 질문하자 그는 “이게 지금 국정농단 의혹사건이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 전까지 그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사람들은 ‘경제학자 주종환(전 동국대 교수. 2014년 작고)의 아들’이라고 했다. 청문회는 그를 누구의 아들이 아닌, ‘소신있는 경제 전문가 주진형’으로 세상에 알렸다.

그는 한동안 기업 경영자로 살았지만, 그 경력을 지우고 보면 경제학자의 바탕이 드러난다. 그는 대학(서울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국제무역)을 수료했다. 애초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지도교수를 3번이나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자 학위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것이 애초 계획했던 삶의 길을 바꾸어놓았다.

“선생(교수)이 되겠다던 생각을 내려놓고 보니, 매달려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었어요. 그 뒤론 의미있고 보람있다고 생각되는 일을 열심히 해왔습니다. 옳은가 그른가를 먼저 생각하고, 이롭냐 아니냐는 별로 생각을 안 했어요. 아버지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을 젊어선 하지 않았는데, 아이들 키우면서 보니 알겠더군요. 자유주의, 비권위주의, 반골 선비, 권력을 우습게 보는 거, 굽신거리지 않고 사람을 다 똑같이 존중하는 거요.”

삼성증권 우리금융 거쳐 한화증권 대표로

그의 부친은 ‘토지공개념’ 공론화를 이끈 인물로, 참여연대의 참여사회연구소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대학을 떠난 주진형은 세계은행(WB)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며 여러 국가의 정책 이슈를 다뤘다. 기업으로 간 것은 1996년 귀국한 뒤의 일이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서 한동안 일했고, 컨설팅회사 에이티(A. T.)커니에서 1년 반 일했다. 그 뒤 정도경영·윤리경영을 표방한 황영기씨의 영입으로 삼성증권(전략기획 상무)에서 일하며 금융 쪽 경영에 발을 들였다. 우리금융지주(전략기획 상무)를 거쳐 한화증권 대표를 역임했다.

“귀국 전에 한국에 와서 친구들을 만나보니 연구원 생활에 다들 보람을 못 느끼고 있었습니다. 컨설팅업체 면접을 봤는데, 너무 자주 밤늦게까지 일해서는 가족을 제대로 돌볼 수가 없어서 제쳐두고, 기업 쪽에 도전해보기로 했지요. 잘 모르니까, 한번 해보자 한 거지요. 아내는 내가 석달 안에 회사 기물 때려부수고 나올 거라고 했는데(웃음) 삼성전자·생명에서 3년 반이나 일을 했습니다.”

한화증권 대표 재직 시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있었다. 삼성은 물론 한화 쪽에서도 찬성하라고 압력과 요청이 있었지만, 그는 반대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뭔가?

그는 2007년 누리집 ‘김선주 학교’에 ‘공 선생’이란 필명으로 <공 선생의 경제문법>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경제 전문가로서 세상과 만남을 시작했다. 공 선생이란 필명은 한겨레 논설위원을 지낸 김선주(70)씨가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경위는 이렇다.

“사람들이 ‘주 박사’라고 하는데, 본인이 싫어해요. 박사학위를 안 받았거든. 그래서 내가 인생이 ‘공수래공수거’임을 아는 사람이니, 공 선생이라 하자 했어요. 그 사람, 사사로운 욕심이 없어요. 그래서 복선을 깔고 이야기하거나 에둘러 말하는 거 없이 직진하지요. 속은 따뜻해요. 증권사 인력 감원할 때, 내보내야 할 사람들을 놓고 얼마나 고민했는지 나는 봤어요. 노무현 대통령 서거했을 때 그 막히는 길을 밤새 손수 차를 운전해서 나를 태우고 봉하까지 간 것도 주진형이었지.”

최순실 청문회가 열리기 10개월 전인 지난해 2월, 그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총선공약단 부단장을 맡아 잠시 일했다.

“세상에 얼굴 드러내는 거 싫어하는데, 정권 교체를 돕자고 잠깐 외도를 했습니다. 일이 재미있고 가치가 있으면 하는 거지요. 실제 보람이 있었어요. 장기 소액연체자 채무 탕감, 건강보험료 부과기준 소득 중심 개선, 기초연금 30만원으로 인상, 공공임대주택 확대, 지방국립대 육성 등 공약을 마련했지요. 대가를 바라서 한 일이 아니니까, 총선 다음날 짐 싸서 나왔습니다. 그걸로 끝.”

부친은 ‘토지공개념’ 공론화한 경제학자
<공 선생의 경제문법> 블로그 연재도
지난해 총선 민주당 총선공약단 참여
“정권 교체 돕자고 잠깐 외도했다”

‘경제, 알아야 바꾼다’ 제목 페북 방송
방송 3개월만에 1600만 조회수 기록
“어떤 공공서비스 더 늘리느냐 중요
잘못하면 원청 부문만 키울 수 있어”

‘사회적 정체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당시 문재인 대표 쪽에서 먼저 영입을 제안했고, 합류한 것은 김종인씨가 비대위 대표를 맡았을 때다. 김종인 대표가 영입했다고 발표한 것은, 그가 한화증권에서 전체 직원의 21%를 감원하는 구조조정을 실시한 인물이라는 노동계의 부정적인 시각에 따른 부담을 김 대표 쪽이 지겠다고 요청해서다.

그는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 금융계열사 관리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고, 구조조정을 할 바엔 “내가 하겠다”고 자청해 한화증권 대표를 맡았다. 영업 못하는 사람을 골라 인력 줄이는 것으로 끝나는 구조조정보다는 “감원 뒤에라도 증권업이 고객의 눈물을 짜내 돈을 버는 것에서 벗어나는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고객의 주식을 너무 자주 사고팔면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그런 그를 업계에선 ‘돈키호테’라고 불렀다.

-지금은 직업이 뭔가요?

“없어요. 그냥 백수지.”

-아직 젊으신데, 심심하지 않으세요?

“전혀. 아주 재밌게 잘 살고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나’가 중요하지, ‘사회적 정체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업에서 일하긴 했지만, 그것도 ‘어쩌다 회사원’이 됐던 것일 뿐이지요. ‘이런저런 세상문제 풀이’ 하는 거, 그게 내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그의 사고는 한국의 진보·보수 주류와는 결이 다르다. 그는 한번도 마르크스주의에 설득돼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운동으로서 경제학이 아니라 학문으로서 경제학에 관심을 가졌다.

“시장경제 원칙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공평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내 생각은 미국 민주당 중도 정도의 사고일 텐데, 한국에서는 그것도 자리잡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진보와 보수 모두 매우 ‘국가주의’적이죠.”

그는 대학 시절 선배였던 고 김기원 교수(한국방송대)와 죽이 잘 맞았다. 김 교수는 진보-보수라는 잣대만으로는 부족하고, 수구-개혁이라는 잣대를 함께 써야 한다고 강조한 학자다.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것이 재벌 이익을 해치게 되는 때는 입을 닫아버립니다. 진보 쪽에서도 우리나라에선 노동운동이 사회개혁에 더는 주도적 구실을 못 하고 오히려 개혁을 막는 구실을 한다는 얘기를 사석에서 많이 하는데, 공개적으로는 아무도 얘기를 안 합니다. 유일하게 김 교수만 그 얘기를 했죠.”

그는 “적자가 지속적으로 나는 기업이라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며 “그래서 실업에 대비해 실업급여를 확대해야 하는데, 여기에 적극적이지 않으면서 노동을 대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밥을 굶는 노인 문제 해결을 뒤로 미뤄놓고 기본소득을 얘기하면 국민들이 무슨 관심을 갖겠느냐”며, 우리와 역사와 조건이 다른 외국의 정책인데도 먼저 얘기하기만 하면 똑똑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월 초부터 석달 남짓 ‘경제, 알아야 바꾼다’는 제목으로 손혜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묻고 주진형이 대답하는 페이스북 생방송에 나섰다. 몇 개 주제만 다루려던 것이 길어졌다. 방송 시작 3개월 만에 1600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방송 내용을 정리해 <경제, 알아야 바꾼다>는 책을 냈는데, 한달여 만에 2만부가 나가, 6쇄를 찍었다.

방송을 하고 책을 내는 사이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정권이 바뀌었다. 그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 해결 방향을 집중된 권력의 분산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주 전 대표는 우리나라가 원청-하청으로 갈라져 있다고 말한다. 이런저런 사회권력을 가진 10%가량은 원청에 속하고, 나머지는 하청에 편입돼 있다는 것이다.

“중앙집권적인 제도, 관료에게 과도한 권력 위임, 지나친 경제력 집중, 이것이 우리나라 모든 문제의 핵심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사회 기본 권력구조가 깨지지 않는 한, 이것 조금 저것 조금 바꾼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각종 선거는 후보를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제대로 정책 토론도 없는 상태에서 후다닥 치른다. 그런 정치를 ‘구경만 하는 민주주의 또는 극장식 민주주의’라고 그는 말한다. 그 틀에 균열을 낼 수 있게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 사법개혁만이라도 다시는 뒤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한다면 대단한 일이 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정부가 특정한 경제정책을 통해 경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낡은 사고죠.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의 30%를 투자에 쓰는 나라인데, 성장률은 점점 떨어져 이제 3%가 안 됩니다. 산업과 교육 사이에 간극이 큽니다. ‘사람을 통한 성장’이 중요하지요. 좋은 인력과 좋은 제도의 중요성을 기업에 있는 사람은 다 느끼고 있습니다.”

“자본의 착취 발상만으론 문제 못 푼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81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공약했다. 81만개는 전체 일자리 가운데 공공부문 일자리 비중을 3%포인트 높인다는 목표에서 나온 것이다. 주 전 대표는 “지난 5년간 일자리가 200만개 늘었는데, 그 가운데 100만개는 60살 이상 고령층 일자리였다. 81만개는 숫자만 봐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어떤 공공서비스를 얼마 더 제공하겠다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하면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는 게 원청 부문만 키우게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그 첫 작업으로 인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1만명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분업은 가속화하고 노동시장은 계속 분화하는데, 우리나라는 호봉급 제도가 강해 생산성에 부합하는 보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 고용, 외주화 확대 압력이 크다. 이를 자본의 착취라고만 여기는 발상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더 부합하는 직무급 쪽으로 전환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 경영을 하는 분들도 직무급제 전환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자꾸 외주화로 대처하고 개선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아쉬워했다.

“깜깜한 데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는 가로등 아래를 맴돌며 계속 열쇠를 찾는 시늉만 하는 격이죠. 낡은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한테는 얘기를 해도 소화를 잘 못합니다. 저는 젊은 세대에 기대를 겁니다. 제 얘기나 책에 30~40대가 큰 관심을 보이니 고마울 뿐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쩌면 그 자신이 ‘누구보다 젊은 사고’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까지 집을 사지 않았다. 집을 사서 차익을 거두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전세로 사는 게 가장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었다. 돈이 있으면 ‘경험’을 사는 데 쓴다는 사람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그를 배웅했다. 매우 낡은 준중형 승용차를 그는 몬다.

“아, 이게 그 봉하마을 갈 때 끌고 간 15년 된 그 차인가요?” 그가 대답했다. “이제 18년 됐네요.”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