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가수·방송인 정준영
정준영에겐 ‘4차원’이나 ‘또라이’ 같은 별명이 따라다니지만, 그는 민폐가 아닌 테두리 안의 모든 것을 욕망하고 실천하며 동시에 다른 이들의 권리를 철저히 존중해주는 근대적 자유인이다.  C9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준영에겐 ‘4차원’이나 ‘또라이’ 같은 별명이 따라다니지만, 그는 민폐가 아닌 테두리 안의 모든 것을 욕망하고 실천하며 동시에 다른 이들의 권리를 철저히 존중해주는 근대적 자유인이다. C9엔터테인먼트 제공

“뭐야, 저 인간 끝내 진짜로 속초 갔잖아?” 스마트폰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가 서비스를 시작한 지 일주일 남짓, 한국 내에서 ‘포켓몬 고’ 플레이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인 ‘관동의 태초마을’ 속초는 포켓몬 마스터를 꿈꾸는 덕후들의 성지가 되었다. <한겨레> 기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오로지 포켓몬을 잡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속초행 버스 티켓을 죄다 매진시킨 그 틈바구니에, 정준영도 있었다. 무슨 집 앞 마실 나온 차림으로 속초까지 온 정준영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거나 말거나 일반인들 사이에 자연스레 섞여서 유유히 포켓몬 사냥을 즐겼다. 그 광경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혀 실시간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타임라인에 올라왔고 인터넷 언론들의 기사를 장식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정준영 팬들 중 그 누구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렇지, 저자는 저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자신의 계정에 “짜증나 곧 속초 간다”고 적어 두었을 때부터 음 언제고 가긴 가겠지 싶었을 테니까. 예상보다 빠른 방문 시점이나 방문 당시 차림이 좀 파격적이긴 해도, 정준영이라면 가능한 이야기다.

룰 벗어나지 않는 만큼만 기괴

생각해보면 2012년 엠넷 <슈퍼스타K 4>로 데뷔할 때부터 정준영의 캐릭터는 일관되게 조금은 이상했다. 보통 “아무개 파이팅!”처럼 무난한 한마디를 남기며 무대 위로 올라가는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리 일말의 맥락도 없이 광둥어로 ‘밥 먹었냐’는 뜻의 “이족팡매야”를 록 발성으로 샤우팅하던 순간이나, 기껏 ‘먼지가 되어’를 잘 불러서 심사위원들에게 칭찬받아 놓고선 뒤에 가서 낄낄거리며 로이 킴과 함께 사실 가사를 틀렸네 어쩌네 웃고 떠드는 장면 속에서, 정준영은 그간 보아왔던 어떤 오디션 참가자들과도 달랐다. 방송은 그에게 ‘4차원’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고, 방송이 아니라서 굳이 언어를 순화해야 할 필요를 못 느꼈던 네티즌과 팬들은 그를 ‘미친놈’ 내지는 ‘또라이’라고 불렀다.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던 팬들조차 상당수는 ‘저것도 보다 보면 곧 질리겠지, 애가 오디션 끝나고 나서 얼마나 더 살아남겠어, 이것도 한철인데 있을 때 팬질 해야지’에 가까운 마음으로 정준영의 기행을 지켜봤다. 허나 정준영은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기행으로 낯설어졌고, 음악이니 예능이니 이쯤 되겠구나 싶은 순간 한발 더 나아가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말이다.

‘포켓몬 고’ 성지 된 속초 나타나
일반인들과 섞여 포켓몬 사냥 즐겨
데뷔 때부터 ‘일관되게’ 이상한 행보
모두의 예상 깨고 끝까지 살아남아

여러나라 옮겨다닌 성장 배경
사적 영역 침범한 팬에게 화내고
연예인에게 강요하는 ‘애교’도 인색
욕망하되 타인 존중하는 자유인

주어진 돈가스를 다 비워야 레이스를 계속할 수 있던 한국방송 <해피선데이> ‘1박2일’의 한 에피소드에선 뜬금없이 배경음악을 연주하던 관현악단 연주자들에게 돈가스를 먹이고, 윤시윤이 개명했다는 이야기에 ‘개명 신청 하는 데 수수료가 2만원이 소요된다’는 말을 덧붙이더니 ‘이브라히모비치’로 개명하고 싶어서 개명 신청을 알아봤다고 태연하게 이야기한다. 문화방송 <능력자들>에서는 ‘포켓몬 덕후’로 출연해 진지하게 초등학생들과 <포켓몬스터>에 대한 지식을 겨루고, 문화방송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서는 “어차피 이따가 요리(백종원) 보러 가실 거잖아요”라며 자기가 하고 싶은 온라인 게임만 주구장창 하다가 본방송엔 내보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제이티비시(JTBC) <헌집 줄게 새집 다오>에 제 방의 인테리어를 맡기면서는 “중세시대 유럽풍으로 꾸며달라”고 부탁하고, 새해의 소망을 물어보자 “파워 블로거가 되는 것”이라고 정색하고 답한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핼러윈이니 팬서비스니 하는 명목하에 하는 여장이 거듭하면 할수록 더 완성도가 올라가는 것처럼, 정준영은 일단 자신이 뭔가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남의 눈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최선을 다해 몰두한다. 이쯤 되면 그가 슬리퍼를 찍찍 끌며 옆집 총각 같은 행색으로 속초까지 간 건 딱히 이상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러나 단순히 ‘4차원’이나 ‘또라이’라는 말로만 정준영의 행보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정준영은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지만, 그러느라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선으로는 결코 나가지 않는다. 정준영은 방송에서 남들이 좀처럼 하지 않는 솔직한 말을 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타인을 비방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나 ‘1박2일’, <헌집 줄게 새집 다오>에서 선보인 행보들은 딱 방송이 정해 놓은 게임의 룰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만큼만 기괴하다. 정준영이 ‘포켓몬 고’ 때문에 속초에 등장한 건 보통의 연예인들이 하지 않는 일이란 점에서 흥미로우나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었으며, 그가 설령 진심으로 ‘이브라히모비치’로 개명한다 해도 그에 따른 불편은 그가 감수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리고 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리얼리티 쇼였던 온스타일 <비 스투핏>의 한 장면,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들과 제작진이 얼결에 생판 타인의 캐리어를 가져왔단 사실을 알게 된 정준영은 정색을 하며 그걸 왜 가져왔느냐고 묻고는 손수 공항 안내 데스크에 가방을 가져다주며 말한다. “민폐 끼치는 거 굉장히 싫어해.” 이어지는 영상에선 그가 촬영 과정 내내 촬영팀이 좀더 좋은 각도에서 촬영하기 위해 비행기 통로나 계단참에 서 있을 때마다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동선을 해치지 않는 위치에 서서 촬영하라고 말하는 모습들이 나온다. 정준영은 방송이나 세상이 요구하는 것에 맞추느라 저 자신을 깎아낼 생각이 없고, 자신의 그러한 생각과 선택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느끼는 만큼 타인에게도 존중받아 마땅한 세계가 있음을 잘 안다.

감정에 충실하되 남 깔보지 않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지키는 사람이 적은 탓에 강조하려면 공자나 예수 같은 현인들의 이름을 들먹여야 하는 황금률,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정준영은 충실히 따른다. 그는 자신이 사는 숙소 앞에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자신이 반려동물을 맡긴 동물병원을 찾아가 멋대로 반려동물을 만진 팬들처럼 존중받아야 할 자신의 사적 영역을 멋대로 침범한 팬들에 대해서는 공적인 인터뷰 자리를 통해 화를 내고, 한국의 연예인들이 종종 강요당하는 ‘애교’를 부리는 데도 인색하다. 동시에 팬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간 팬사인회 현장에서 팬들이 말을 건네면 까칠함 없이 성의껏 대화에 임한다. 그 순간의 저 자신을 속이지 않고 감정에 충실하되 저 자신을 내세우느라 남을 깔보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붙여진 별명인 ‘4차원’이나 ‘또라이’ 같은 애칭에 정이 들어 굳이 그 별명을 고수해야겠다면, 그 앞에는 반드시 ‘무해한’이란 수식어가 붙어야 하리라. 그는 세간의 시선에 제 행동을 맞춰야 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맥락 안에서 ‘4차원’이거나 ‘또라이’일 순 있겠으나, 그 단어들이 자주 내포하는 민폐와 독단의 요소가 없다는 점에서 ‘무해’하다.

그가 이런 사람으로 완성된 것에 대해선 여러 가지 분석이나 추측이 가능하다. 부모를 따라 끊임없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편성을 체득한 게 아닐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음악을 하기 위해 집에서 받는 일체의 지원을 포기하고 혼자 생계를 책임지며 제 앞가림을 하고 살아오는 과정에서 성숙함을 갖추게 된 건 아닐까 추측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모든 추측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의 정준영이 보여주는 태도 자체다. 타인의 취향과 행동에 대해 “내가 보기에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재단하고 비난하기 바쁜 세상에서, 민폐가 아닌 테두리 안의 모든 것을 욕망하고 실천하며 동시에 다른 이들의 권리를 철저히 존중해주는 근대적 자유인이 세간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사뭇 긍정적인 일이다.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사소한 일로도 품행을 지적당하기 좋은 연예인이라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말이다. 그러니 이 글은 이렇게 마무리하도록 하자.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정준영의 포켓몬 마스터 수행을 응원한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