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LOGIN

MEMBER LOGIN

총 게시물 3,790건, 최근 1 건
   
[시사] 쌍차 전원 복직 그 후 1년... "우릴 벼랑으로 내모는 21억"
글쓴이 : 시냇물  (121.♡.55.55) 날짜 : 2019-09-12 (목) 20:49 조회 : 49

<iframe src="http://www.facebook.com/plugins/like.php?href=http%3a%2f%2fwww.ohmynews.com%2fNWS_Web%2fView%2fat_pg.aspx%3fCNTN_CD%3dA0002569713&send=false&layout=button_count&width=105&show_faces=true&font=arial&colorscheme=light&action=like&height=21&appId=145388638855931" scrolling="no" frameborder="0" allowtransparency="true" style="border-width: initial; border-style: none; overflow: hidden; width: 105px; height: 25px;"></iframe>

[이면N]은 뉴스의 이면을 봅니다. 그 이면엔 또 다른 뉴스가 있습니다.[편집자말]
 지난 5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이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에 위치한 노조 사무실 '차차'에서 ><오마이뉴스 >와 인터뷰하고 있다.
▲  지난 5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이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서 말하고 있다.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의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

"작년 합의로 전원 복직은 됐지만 사실은 좀 무덤덤해요. 여전히 이렇게 길 위에서, 공장 밖에서 일터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아직 무급 휴직 상태고요. 작업복 입고 실제 컨베이어 라인 위에 섰을 때야 비로소 실감이 좀 나지 않을까 싶어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공장 쪽을 쳐다보던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50)이 말했다. 

"특히 쌍용차 판매가 부진하다거나 실적이 안 좋다는 뉴스라도 나오면 괜히 더 불안한 마음이 들죠. 그러면 정말 안 되겠지만, 혹시나 또 약속이 안 지켜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마조마해지고... 저뿐만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48명 동료들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10년을 길바닥에서 기다렸으니까요. 무급 휴직 기간에는 생활비가 없으니 대부분 건설 현장에서 일하거나 운전 일을 하고 있어요. 어렵지만 올 연말까진 버텨야죠."
  
'마음 무거웠는데, 기쁨 나눌 수 있어 다행'  쌍용차 해고노동자 복직 잠정 합의안이 발표된 14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장이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손을 잡고 기뻐하고 있다. 김 지부장은 ‘먼저 복직하게되어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제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인사를 건넸다.
▲  1년 전인 지난 2018년 9월 14일, 쌍용차 해고노동자 복직 잠정 합의안이 발표된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김득중 지부장이 김승하 KTX열차 승무지부장의 축하를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1년 전인 지난 2018년 9월 14일, 노사정은 쌍용차 해고자 전원 복직에 합의했다(관련 기사 : 김주중과 문재인, 119명을 공장으로 돌려보내다).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9년 만이었다. 해직자 119명의 60%를 2018년 말까지, 나머지 40%는 2019년 상반기까지 채용하고, 2019년 상반기 복귀자 중 부서 배치를 받지 못한 경우 2019년 7월 1일부터 6개월간 무급 휴직한 뒤 부서 배치를 완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합의에 따라 지난 2018년 12월 31일, 해고자 71명이 복직했다. 김 지부장 등 나머지 48명은 7월 1일 자로 복직됐고, 현재 무급 휴직 상태로 올 연말까지 부서 배치를 기다리고 있다.

전원 복직 합의 1년을 맞아 <오마이뉴스>가 평택 공장 앞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실에서 김 지부장을 만났다. 김 지부장은 2009년 쌍용차 파업 당시 과잉 진압을 인정한 경찰이 노조에 대한 20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여전히 철회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합의 직전인 2018년 6월 생활고와 트라우마 끝에 목숨을 끊은 동료 김주중씨를 생각하면서는 눈물을 보였다.

2009년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 아픔... 옛 동료들과 좋아질 것
   
 지난 5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이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에 위치한 노조 사무실 '차차'에서 ><오마이뉴스 >와 인터뷰하고 있다.
▲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에 위치한 쌍용차지부 노조 사무실 "차차".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 오늘 공장을 방문하고 왔다고 들었다.
"추석도 다가오고 옛 동료들에게 인사도 하고 복직한 분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얼굴도 볼 겸 다녀왔다. 회사 쪽과 협상하느라 공장 사무실에 간 적은 많지만 실제 현장 라인에 들어간 건 오늘이 10년 동안 딱 세 번째였다. 첫 번째론 2014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때 후보자 신분으로 방문했고, 두 번째는 작년 복직 합의 후 이낙연 국무총리 현장 방문 동행 때였다. 오늘은 행사 일정이 아니라 복직된 노동자로서 동료들과 만날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ad<iframe frameborder="0" marginwidth="0" marginheight="0" scrolling="NO" width="250" height="250" allowtransparency="true" id="ttx_area_1078087127_98" style="border-width: 0px; border-style: none;"></iframe>
- 분위기는 어땠나.
"대부분 반갑게 맞이해줬다. 고생 많았다는 인사도 여럿 받았고, 이제 내년 1월이면 복직하는 거냐고 물어오는 옛 동료도 있었다. 속으론 다 복잡한 심정이겠지만 겉으론 다들 격려해줬다. 작년에 복직한 동료들도 대체적으로 적응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서 배치는 근속과 나이에 따라 우선권이 주어지는데, 복직자들은 근속에서 밀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피 부서에 배정된 경우가 많다. 오늘도 자동차 천정이나 패널을 만지는 공정 라인에서 복직한 동료들을 만났다. 계속해서 고개를 젖히고 위를 쳐다봐야 하는 공정이라 아직 적응기를 거치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동료들이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스러웠고, 또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쌍용자동차는 지난 2009년 경영난을 이유로 전체 노동자의 36%인 2600여 명을 구조조정 했다. 약 1700명이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났고, 900여 명이 정리해고 됐다. 10년이 지나면서 해고자 164명이 남았다. 2015년 노사 합의 이후 45명이 복직됐고, 나머지 119명이 작년 전원 복직 합의의 대상이었다. 쌍용차 사태는 '해고는 살인'이란 말의 상징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30명의 해고자와 가족들이 사망했다. 동료들은 해고되지 않은 자와 해고된 자,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려 상처와 갈등이 깊었다.

- 복직자들은 이미 현장에서 일하고 있고, 지부장도 복귀를 앞두고 있다. 지난 10년 투쟁 동안 회사 안의 동료들과 갈등도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파업 때나 이후 투쟁 때나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불편했던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젠 그 사람들 입장에도 한번 서보자는 생각을 한다. 저 양반도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그래 저 사람이 굳이 악의적으로 회사 편에 서진 않았을 거다.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이렇게.

사실 이 문제를 두고 복직을 앞둔 동료들과 얘기를 나눈 적도 있다. 그때 그랬다. 누가 더 아프고 누가 덜 아프고 이런 건 다 각자 생각이다. 그들도 아팠을 거다. 어쨌든 2009년은 쌍차 노동자 전체의 아픔이니까. 복직하고 나서도 일단은 말을 좀 아끼고 기다려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억울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서둘지 말고, 더 많이 들어주고 지켜보자고 했다. 2009년 이전과 완전히 똑같아질 순 없겠지만 노력하면 좋아지지 않겠나."

작년 합의 후 김주중 동지 생각나... 집에 날아온 국민연금 우편 보며 복직 실감

저녁 시간 무렵이었다. 인터뷰 도중 갑자기 그가 식사하면서 계속하면 안 되겠냐고 했다. 허기가 져서 도저히 힘들다는 거였다. "단식을 한 이후에 체력이 많이 나빠졌어요. 말을 많이 하면 기가 빠져요. 미안해요." 그는 지난 10년간 총 100일이 넘는 네 번의 단식을 했다. 그는 오전 공장 방문 때 직원 식당에서 급식을 먹는 게 영 어색해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노조 사무실 옆 김치찌개 집으로 인도한 그가 익숙한 솜씨로 펄펄 끓는 김치찌개에 라면을 쪼개 넣었다.
  
 지난 5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이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에 위치한 노조 사무실 '차차'에서 ><오마이뉴스 >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 지부장이 노조 사무실 옆의 김치찌개 집으로 인도했다.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 작년 9월 합의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사실 정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땐 대한문 분향소에 있지 않았나. 6월에 세상을 떠난 김주중 동지가 가장 생각났다. 합의가 조금만 더 빨리 됐다면, 회사가 복직 시한만 정해줬더라면, 나는 김주중 동지가 그렇게 자결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김주중은 돌아올 수 없다. 14일 날 합의하고 분향소로 돌아왔는데 30명의 영정 사진들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가장 많이 생각났다."

김 지부장이 눈물을 훔쳤다. 식당 주방에서 파를 썰어 눈이 매운 거라고 했다.

- 작년 9월 합의 후 지난 1년은 어떻게 지냈나.
"무급 휴직 상태지만 바쁜 거로 치면 더 바쁜 1년이었다. 노조 직원들이 거의 다 복직을 해서 노조 일이 몰렸다. 연대 방문할 투쟁 현장도 많고 회의도 많아서 노조 일이 산적하다. 지금은 특히 쌍차 10년 투쟁을 정리하는 백서를 준비 중이다. 연대 요청이 왔는데 일정이 겹쳐서 가지 못할 때가 가장 미안하고 마음이 안 좋다. 지부장 임기도 올해로 끝이다. 2013년부터 했으니까 정말 오래 했다."

- 작년 합의 후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저도 그렇고 가족들도 그렇고, 그렇게 실감이 안 났다. 무급 휴직으로 기다리고 있는 다른 동료들도 비슷한 얘길 한다. 너무 오래 싸웠으니까. 가족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싸움이었다. 답이 없어 보이고, 끝날 것 같지도 않은데 생계는 책임지지 않고 밖으로 돌기만 하는 가장을 누가 좋아하겠나. 그래도 7월에 근로계약서를 쓴 이후 집으로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 우편이 날아오는 걸 보니 아내가 그제야 좀 실감이 난다고 하더라. 내가 말로 전달할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웃음). 아내가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병원에서 간호 조무 일하면서 대신 가장 역할 하고..."

- 파업 때 초등학생이던 아들이 대학생이 됐다.
"큰아들에게 누가 아빠 뭐하냐고 묻거든 이제 쌍용차 다닌다고 해도 된다고 했다. 그 정도 얘기한 게 전부다(웃음). 아이와 10년 동안 몸으로 부대끼지 못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가까워진다는 게 불가능하더라. 길에서 싸울 땐 같이 못 있어 줘서 미안했는데, 막상 투쟁이 끝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가 되니 아이가 커서 대학교에 입학해 집을 나갔다. 세상살이가 그렇더라. 그래도 어린 나이에 엇나가거나 아빠를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다른 또래에 비해 성숙하게 자란 것이 정말 고맙고 또 고맙다. 작은 아이는 지금 중학생인데, 이 아이에겐 지금부터라도 최대한 점수 따려고 노력 중이다(웃음)."

- 무급 휴직으로 대기 중인 다른 복직자들도 만나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임을 가지지만 다들 생계에 바빠서 많이 보진 못한다. 평택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가장 많고, 포천, 여수, 저기 백령도까지 전국에 흩어져있다. 부서 배치와 업무 복귀가 약속된 연말까지 잘 기다리고 버텨내자고 서로 다독이고 있다."

뒤늦게 사과한 경찰, 20억 손배소송 철회 안해... 쌍차가 받은 연대의 힘 돌려줄 것
   
 지난 5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이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에 위치한 노조 사무실 '차차'에서 ><오마이뉴스 >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 지부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쌍차가 지난 10년 동안 받은 연대의 힘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다.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 쌍용차 사태의 남은 문제는 뭔가.
"경찰이 10년 만에 쌍용차 파업 당시 과잉 진압에 대해 사과했지만(지난 7월 26일 경찰은 쌍용차 파업 과정에서 있었던 경찰력 남용과 인권 침해에 대해 공식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자까지 포함해 21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 청구는 끝내 철회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잘못하긴 했는데, 어쨌든 그 과정에서 너희 때문에 입은 피해는 물어내라'는 게 말이 되나. 21억 원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은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손배 소송에 붙잡혀 기약도 없이 불안에 떨고 목숨까지 잃어왔다. 우리가 아직까지 1인 시위에 나서고 길 위에 있는 이유다. 경찰은 지금이라도 당장 소송을 철회해야 한다. 대법원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길 바란다.

노조가 여력이 안 돼 제대로 붙지 못하고 있지만,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 간의 재판 거래 의혹도 굉장히 문제다. 지금 양승태 등이 사법농단 혐의로 재판 중이지만, 쌍용차 해고 무효 소송이 재판 거래 사안이었다는 의혹이 보도되는 걸 보고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노동자 목숨을 담보로 거래가 이뤄졌다는 거다. 쌍용차 사태 이후 30명이 죽었는데 사법부가 그럴 수가 있나. 바로 잡아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모두가 사법 농단 사태에 대해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 앞으로 계획은?
"더 이상 정리해고로 인해 죽음을 맞는 노동자가 없도록 조그만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면 어떨까 구상 중이다. 쌍차는 지난 10년간 정리해고 싸움의 상징이었다. 하루 아침에 해고가 돼서 싸웠는데 불온 세력에 빨갱이가 됐다. 쌍차 출신이라고 하면 취직이 안 됐다. 사회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당장 수입이 끊기면 당연히 대출을 받게 되고 1년, 2년 지나면 금방 빚더미에 앉는다. 정말로 해고는 살인이다. 30명이나 되는 동료와 가족들을 떠나보낸 우리는 그걸 너무 잘 안다. 요즘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 열심히 활동하시는 것처럼, 당사자기 때문에 가장 잘 공감하고, 현실적이고 정확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당장은 쌍용차 복직자들이 월급 일부를 모아 연대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연대 투쟁도 나서기로 했다. 지난 6월부터 버스 한 대를 대절해 복직자들과 함께 한국 지엠과 일진다이아몬드, 세종호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동참하고 왔다. 퇴근 후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몸은 다들 피곤해하지만 갔다 오면 보람을 느낀다. 지금까지 쌍차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지난 10년간 함께 해준 시민들의 힘이었다. 그걸 어떤 방식으로든 되돌려주고 싶다. 정리해고가 없어지는 그 날까지 함께 싸우고 연대할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가 평택터미널까지 빗길을 차로 배웅해줬다. 그의 차는 17년 된 쌍용자동차 SUV였다.
 
 서세진 감독의 다큐멘터리 ><저 달이 차기 전에(2009) >의 한 장면.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경찰이 노조원들을 과잉 진압하는 모습이다. 경찰은 10년이 지난 지난 2019년 7월 26일에야 당시 진압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  서세진 감독의 다큐멘터리 <저 달이 차기 전에(2009)>의 한 장면.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경찰이 노조원들을 과잉 진압하는 모습이다. 경찰은 10년이 지난 지난 2019년 7월 26일에야 당시 진압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 서세진

관련사진보기

 2009년 8월 4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진압작전이 시작된 가운데 도장공장입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에 '가족들 사랑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  2009년 8월 4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진압작전이 시작된 가운데 도장공장입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에 "가족들 사랑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총 게시물 3,790건, 최근 1 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3790 [책]  "저는 '인간'이 아니라 '인적 자본'입니다" 시냇물 10-18 17 0
3789 [인물]  고문과 옥살이, 재심과 무죄... 19세 소년의 5.18 이후 삶 시냇물 10-17 15 0
3788 [일반]  내몽골 초원으로 떠났다...은하수가 쏟아졌다 [프레시안 공정여… 시냇물 09-20 175 0
3787 [일반]  마침내 나는 개가 되었구나... 언론인인 게 부끄러웠다 시냇물 09-18 126 0
3786 [시사]  경제직필]경기 위기, 일본이 반면교사 홍성국 혜안 리서치 대표 시냇물 09-12 58 0
3785 [일반]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연재… 시냇물 09-12 65 0
3784 [시사]  쌍차 전원 복직 그 후 1년... "우릴 벼랑으로 내모는 21억" 시냇물 09-12 50 0
3783 [일반]  그렇소, 우린 사회주의자요. 아직? 아니 지금이야말로! [장석준 … 시냇물 09-10 73 0
3782 [일반]  "조선·동아 친일·반민족행위 100년 역사 세상에 알릴 터" 시냇물 09-10 78 0
3781 [일반]  시선]정치검사냐, 민주공화국 검사냐 시냇물 09-08 87 0
3780 [시사]  세상읽기]누가 조국에게 돌을 던지나? 강수돌 고려대학교 융합경… 시냇물 09-08 76 0
3779 [시사]  "나경원 자녀 의혹 특검해야" 국민청원 20만명 넘어 시냇물 09-08 66 0
3778 [언론비판]  조선일보·TV조선, 가장 불신하는 매체 1·3위 시냇물 09-08 80 0
3777 [시사]  '심상정-우원식 규탄 시위', 어떻게 나왔나 했더니 시냇물 09-08 93 0
3776 [책]  한국은 왜 아동송출국이 되었나 시냇물 09-08 49 0
3775 [일반]  후쿠시마 사고와 도쿄올림픽 시냇물 09-05 38 0
3774 [일반]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 우리는 왜 질문해야 하는가 시냇물 09-05 44 0
3773 [일반]  직설]자소서 관리 총력전에 희미해진 배움의 이유 시냇물 09-05 41 0
3772 [좋은 글]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일찍 죽는 것이다 … 시냇물 09-05 49 0
3771 [시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지지하는 이유 시냇물 09-05 36 0
3770 [시사]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연재> 고석근의 … 시냇물 08-30 121 0
3769 [일반]  삼촌 잡으려 밤마다 보초 선 열세 살 조카 시냇물 08-30 107 0
3768 [인물]  "섬과 섬 주민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라" 시냇물 08-30 105 0
3767 [일반]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 시냇물 08-21 150 0
3766 [정보]  KAL858, 교민 상대 대북규탄 유도 시냇물 08-21 101 0
3765 [시사]  서울 한복판에서 굶어죽은 탈북 엄마와 아들 <기고> 이흥… 시냇물 08-21 93 0
3764 [일반]  맹호도 <연재> 심규섭의 아름다운 우리그림 (192) 시냇물 08-21 84 0
3763 [시사]  전태일 분신 뒤 구로공단 갔던 서울대생 이영훈 시냇물 08-13 71 0
3762 [일반]  남성들에게 묻는다, 무엇이 섹스인가? 신필규(mongsill) 시냇물 08-13 65 0
3761 [시사]  머리 기르러 서울대 갔던 조국, '두꺼비'에서 장관 후… 시냇물 08-13 61 0
3760 [일반]  전우용의 우리시대]식민잔재 ‘청산의 시대’ 전우용 | 역사학자 시냇물 08-13 52 0
3759 [시사]  ]피해자의 품격, 국가의 품격 시냇물 08-13 47 0
3758 [시사]  “북한의 소는 누가 키우나?” <칼럼> 김동엽 경남대 극동… 시냇물 08-08 122 0
3757 [일반]  우리의 백두산, 중국의 창바이산 시냇물 07-27 61 0
3756 [책]  책과 삶]‘가슴’ 편한 사회를 권하다 시냇물 07-27 62 0
3755 [시사]  기고 뼛속까지 친일 한국당, 총선에서 쓸어버리자! 시냇물 07-27 176 0
3754 [시사]  성명서: 삼성과 문재인 정부는 김용희씨를 저렇게 죽게 내버려 … 시냇물 07-27 52 0
3753 [일반]  ‘정수일의 여행기’를 고대하며 <노회찬 유고> 정수일 선… 시냇물 07-23 59 0
3752 [책]  김종철의 생태사상론 "생태문명 전환의 열쇠는 정치" 시냇물 07-18 125 0
3751 [일반]  사냥꾼도 세상을 두려워하는 순간 토끼에게조차 업신여김을 당할… 시냇물 07-18 124 0
3750 [좋은 글]  사유와 성찰]새만금을 세계평화의 ‘비무장지대’로 시냇물 07-07 63 0
3749 [일반]  “불편해도 괜찮아요” 오수경 자유기고가 시냇물 07-05 55 0
3748 [정보]  ]우리가 모르는 북극과 남극 장영복 신발끈여행사 대표 시냇물 07-05 113 0
3747 [일반]  10년 전과 달라진 북한 관광 시냇물 06-29 206 0
3746 [시사]  "박근혜 댓글조작 묻으려 간첩 조작... 가장 끔찍했던 건" 시냇물 06-28 191 0
3745 [책]  아름다운 세밀화에 담은 우리 땅의 동·식물, 겨레의 삶 <화… 시냇물 06-27 210 0
3744 [시사]  세상읽기]‘무서운 중2’ 뺨치는 한국당 시냇물 06-27 198 0
3743 [일반]  "미쳤구나" 소리 들은 웨딩 촬영, 최고였습니다 시냇물 06-27 211 0
3742 [일반]  책을 내면서 녹색평론 통권 제166호 김종철 시냇물 06-26 237 0
3741 [언론비판]  조선일보의 '막가파'식 북한 보도 [기고] 언론자유와 … 시냇물 06-26 255 0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수집거부  |  포인트정책  |  사이트맵  |  온라인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