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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김정일이 변장하고 도쿄에", 그 황당한 오보는 왜 나왔나
글쓴이 : 시냇물  (121.♡.55.62) 날짜 : 2019-06-05 (수) 20:18 조회 :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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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왼쪽 두 번째)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집단체조 예술공연 관람 수행을 통해 공식석상에 다시 등장했다. 조선중앙통신은 4일 김정은 위원장이 전날 평양 5·1경기장에서 대잡단체조 '인민의 나라'를 관람했다며 수행원에 김여정 제1부부장이 포함됐음을 확인했다. 2019.6.4
▲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왼쪽 두 번째)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집단체조 예술공연 관람 수행을 통해 공식석상에 다시 등장했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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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관한 보도에선 유독 오보 논란이 자주 불거진다.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김여정과 김영철에 관한 보도도 그렇다.

최근 한 국내 언론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때문에 책임 추궁을 당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지난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두 사람이 함께 평양 5.1경기장에 나타나 공연을 관람하는 장면이 4일 <조선중앙통신>에 실렸다. 김정은과 두 사람의 관계에 큰 문제가 없다고 추측할 수 있는 장면이다.

직급이 높지 않더라도 김일성 혈통인 김여정이 문책을 당했다면, 김영철의 경우보다 좀 더 큰 문제가 된다. 김정은의 자녀가 아직 어리므로, 김여정은 큰오빠 김정철과 더불어 비상시에 중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신상에 중대 문제가 발생했다는 보도는 상당한 무게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이런 사안에서까지 오보 논란이 불거지니, 북한에 관한 한국 언론의 보도에 문제점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고도 남는다.

북한에 관한 오보는 고의적인 허위 보도 때문에도 생기지만, 북한 체제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도 생긴다. 비정상적이고 시스템이 취약한 국가라는 선입견에 휘둘린 나머지, 잘 나가던 북한 고위층 인사가 북한판 '9시 뉴스'에 한동안 등장하지 않으면 '최고지도자의 미움을 사서 아오지 탄광 같은 데라도 보내진 게 아닌가'라는 추리가 별다른 검증 없이 기사화되는 일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북한에 관한 오보가 많이 생기는 최대 이유는 아무래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북한 뉴스에 관한 수요가 높은 데 반해 '공급량'이 현저히 부족한 현실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뉴스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도 어렵고, 합리적 검증 절차 없이 서둘러 뉴스를 내보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도도하니 김정일'... 취재인가 추리인가 

그런 일은 북한에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관찰될 때 특히 많이 생긴다. 북한 외부에서 관찰되는 특이 조짐으로 인해 북한 뉴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때 오보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 북한에서 김일성 후계자 내정 움직임이 감지되던 1974년 한 해에도 오보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해 2월 16일 자 한국 언론들은 김일성 후계자로 동생 김영주가 내정됐다는 보도를 일제히 내놨다. 일례로 <동아일보>는 '김일성 후계로 부각, 김영주 북괴 정무원 부총리 선임'이란 제목 아래 이렇게 보도했다.
 
"북괴는 15일 남북조절위 평양측 위원장 김영주를 정무원 부총리로 임명했다고 평양방송이 발표했음이 북한 문제 전문가들에 의해 16일 알려졌다. 김일성이 실제(實弟)인 김영주를 이 자리에 임명한 것은 김영주에게 노동당과 행정부의 실권을 모두 장악시켜 그의 후계자로 삼으려는 저의를 드러낸 것이며, 이를 계기로 북괴 내부에는 앞으로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질 것으로 북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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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2월 16일자 <동아일보>.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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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요 언론인 <동아일보>가 평양방송을 직접 인용하지 못하고 전문가들을 통해 간접 인용했다. 북한 문제에 관한 취재원이 극도로 제한돼 있었던 현실을 느낄 수 있다.

이 보도가 오보였음은 그 후의 역사가 증명한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김정일이 후계자로 정해진 것 같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그 뒤로는 김정일에 관한 오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오보는 김정일이 변장하고 도쿄에 출현했다는 보도다. 후계자 김정일이 제61회 국제의원연맹(IPU) 총회 참석 차 도쿄에 출현했다는 것이다. 1974년 11월 18일 자 <경향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북괴 김일성의 장남인 김정일이 지난 10월 IPU 동경 총회 때 이종혁이란 가명으로 북괴 대표단 수행원을 가장, 일본에 입국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북한 후계자가 적국인 일본에 잠입했다가 북한으로 유유히 돌아갔다면, 북일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미국과 일본의 정보기관들도 상부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보도였다.

위 보도에서는 '밝혀졌다'는 표현을 썼다. 김정일의 도쿄 잠입이 명백한 사실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국 언론들이 그 같은 단정을 내린 근거가 11월 19일 자 <경향신문>에 좀 더 자세히 제시됐다.

북한 대표단 속의 리종혁이라는 30대 실무자가 실제로는 김정일(당시 32세)이었을 거라는 전제 아래, 이 신문은 김정일로 보이는 리종혁에 대한 목격담을 상세히 보도했다. 아래의 '이'는 리종혁을 지칭한다. 기사 제목은 '복면 벗겨진 김정일'이다.
 
"IPU 대표를 위한 리셉션이나 교토 관광에서 만난 '이'의 인상은 엘리트 의식에 넘치는, 한마디로 다른 대표와는 달리 선민적 냄새를 풍기고 있었으며, 한국 기자들 사이에서 퍽 이상한 존재로 화제가 될 정도였다."
 
'이'가 주목을 끈 것은 남들과 다른 선민적 태도 때문이었다. 나이가 젊고 지위가 높지 않은데도 뭔가 특이한 분위기를 풍겼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기자들도 그를 주시하게 됐다. 그에게서 선민의식이 느껴진 이유는 위 기사의 다음 문단에서 드러난다.
 
"1백 64cm 정도의 똥똥한 체격, 검은 테의 돗수 높은 근시안경에 짙은 억양의 평안도 사투리. 그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이야기에는 야릇한 조소를 띠어 보이는 습관이 있다."
 
마치 추리소설의 한 대목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북한 실무자 리종혁이 지위에 걸맞지 않게 도도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보고 관찰자들은 '선민의식의 소유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판단이 '김정일이 실무자를 가장해 일본에 와서 회의도 하고 관광도 하고 있구나'라는 결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반 북한 국민들도 얼마든지 도도할 수 있건만, 도도해 보인다는 사실로부터 '김일성 아들일 것'이라는 엄청난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김정일이 이종혁을 가장해 일본에 입국한 사실이 밝혀졌다'는 위 보도에서 '밝혀졌다'는 표현을 쓴 것이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느낄 수 있다.

같은 날짜의 <경향신문>은 '한국 대표들이 본 김정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정일 사진'까지 자신 있게 내보냈다. 경기도 여주·광주·이천 출신의 재선 의원인 신민당 오세응 의원과 대화를 주고받는 북한 사람이 김정일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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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11월 19일자 <경향신문>.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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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진 속 '김정일'은 우리가 아는 그 김정일이 아니다.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 북측준비위원회' 분과위원장 등을 맡아 남한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리종혁과 비슷할 뿐이다.

1936년생인 리종혁은 국제관계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고, 1974년에는 대외문화연락위원회 과장이었다. 1974년 한국 언론에서는 '이'가 30대로 보도됐다. 리종혁이 당시 외교관계 일을 하고 있었던 데다가 1974년에 38세였으므로, 한국 언론에 보도된 '이'는 리종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실린 리종혁 사진.
▲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실린 리종혁 사진.
ⓒ 북한정보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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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도쿄에 출현했으며 오세응 의원과 대화를 나누다 사진이 찍혔다는 위 보도들은 모두 오보로 판명됐다. 북한 후계 문제에 대한 수요는 높은 데 반해 '뉴스 공급량'이 현저히 부족하다 보니 그런 '불량품'들이 쏟아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부족한 정보, 철저한 통제... 오보의 '원인'

1974년이면 김일성이 한국 언론에 등장한 지 29년이나 되는 시점이다. 그때까지도 한국에서는 김일성 장남의 얼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북한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북한에 관한 오보가 자주 생산될 수밖에 없었던 최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정보 부족의 원인이 남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 정부가 기본적인 정보조차 철저히 숨기는 일이 많다 보니, 정보량이 더욱더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한 정부가 북한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는 것에서 더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유튜브 등을 통해 온 세상이 다 볼 수 있는 북한 신문과 방송조차 차단하다 보니, 남한에서는 북한 뉴스의 '공급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1974년과 달리 지금의 한국 언론사들은 북한 뉴스를 접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문제점은 남는다. 북한이 공개하는 뉴스만으로 북한 내부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으므로, 지금 상황에서도 여전히 오보의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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