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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글쓴이 : 시냇물  (121.♡.55.39) 날짜 : 2019-03-13 (수) 19:16 조회 : 299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연재>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233)
고석근  |  ksk21ccc@hanmail.net
승인 2019.03.13  10:28:53

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프랑스와즈 사강)


 안개
 - 기형도

                      1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욱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똑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뒷산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면 사방이 뿌옇게 보인다. 흐릿한 고층 아파트들이 서양 중세 도시의 성곽 같다. 자전거를 타고 헉헉 매캐한 공기 속을 헤쳐 나간다. 집에 들어와도 공기가 탁하다. 숨이 턱턱 막힌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공기 청정기를 샀다. 몇 시간을 돌렸더니 거실의 공기가 향긋하다. 이제 숨을 좀 쉴 것 같다. 뿌연 세상 속에서 나만의 청정한 세상.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평화롭다.

 작년엔 난생 처음 에어컨을 썼다. 거실 천장에 달려 있는 에어컨을 비닐로 싸두고 있었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비닐을 뜯어내고 에어컨을 켜니 오! 찬바람이 쏴 거실 전체를 한순간에 가득 채웠다. 모처럼 큰 대자로 편히 누웠다.

 재작년엔 스마트 폰을 샀다. 핸드폰 없는 나는 편한데 남들이 불편하단다. 결국 세상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제 핸드폰은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내가 어딜 가건 항상 내 몸에 착 달라 붙어있다.    

 나는 자꾸만 자본주의에게 굴복해 간다. 이상(理想)보다는 생존이 먼저니 결국 생존을 담보로 나를 길들인 자본주의 앞에 속수무책이다.

 세상이 뿌옇다. 한 치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교(資本主義敎)의 신도는 세상을 똑바로 볼 필요가 없다. 교주님께서 세상만사 다 역사하시니 우리는 주님의 충직한 종으로만 살면 된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聖域)이기 때문이다./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방죽 위에서 취객(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19세기 미국의 추리소설가 에드가 앨런 포는 그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안개에 갇힌 세상’에서 한 치 앞도 잘 보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악마가 되어 가는지를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상냥하고 소심한 남자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는 선하게 보인다. 사람들은 그를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왜 그럴까? 자신들이 대다수 ‘선량한 소시민’이어서 자신들 내면의 깊은 광기가 두려워서 그런 것일까? 

 ‘선량한 인간’은 안개 속에서 안개 너머의 세상을 보려하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인가부터 술독에 빠지기 시작한다. 술은 ‘나’안의 억압된 힘을 일깨운다. 사람들은 술이 문제라고 하지만 실은 ‘나’안의 억압된 것들이 문제다. 술은 그것들을 해방시킨다. 취중진정발(醉中眞情發 술에 취하게 되면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게 된다)이다.  

 ‘나’는 자신 안의 온갖 괴기스러운 것들은 그대로 풀어놓는다.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자신의 손등을 할퀴었다는 이유로 나무에 목매달아 죽이게 되고, 그 고양이를 닮은 고양이를 데려와 기르다 그 고양이마저 죽이려 든다. 막아서는 아내에게 흉기를 휘둘러 아내를 살해하게 된다. 그 다음 수순은 아내 시체를 처리하는 것. 벽에 아내를 세워 넣고 태연히 회칠을 한다.

 경찰들이 찾아오고 ‘나’는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한 말들이 굴레가 되어 그는 결국 아내 살인범으로 체포된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황망했을까? ‘나’는 선량한 사람이었는데, 어디서부터 어긋나게 되었을까? 그는 도무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냥 자신의 처지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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