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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전업작가 되려고 42년만에 역이민 "'간송 전형필', 겸재 덕분에 탄생"
글쓴이 : 시냇물 날짜 : 2018-07-01 (일) 22:05 조회 :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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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송 전형필>,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등의 전기를 쓴 전기작가 이충렬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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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작가 1세대 이충렬, 잠들다'.

한 사람의 일생 동안의 행적을 기록하는 일. '전기(傳記)'의 사전적 의미다. 전기작가 이충렬(64)씨는 다른 이의 일생을 기록하며 그 사람의 죽음에서 글의 마침표를 찍는다. 그에게 인터뷰 맨 마지막에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죽으면, 묘비에 어떤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냐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전기작가'라는 네 글자를 반드시 넣고 싶다고 했다.

이충렬이라는 이름 석 자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지난 2010년에 펴낸 <간송 전형필>(김영사)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면서다. 지금까지 쇄를 거듭하면서 약 8만부 가량을 찍었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전기 작품으로는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전기로는 첫 작품이었다. 이충렬 작가의 첫 책은 전기가 아니라 그림이었다. 지난 2008년에 발간된 <그림 애호가로 가는 길>(김영사). 사연이 길지만 두 책은 그를 장차 전업작가의 길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그는 1976년 이민 길에 올랐다. 아버지 사업이 망한 탓이다. 단국대 국문과에 재학중인 22살 청년 시절이었다. 파라과이에서 한 달,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에서 1, 2년 정도 머물다 1980년 최종 목적지였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LA로 입성했다. 그리고 1993년 멕시코 접경지대인 애리조나주의 작은 도시 노갈레스에 정착했다. 한국에서 살았던 기간의 두 배가량을 외국에서 보냈고, 한국에서 살았던 기간 정도를 노갈레스에서 잡화점을 하며 살았다. 미국으로 이민 간 지 1년만인 1981년, 교회에서 만난 이은경씨와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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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송 전형필>,<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등의 전기를 쓴 전기작가 이충렬씨가 서울 성북구에 있는 최순우 옛집에서 아내 이은경씨와 함께 손을 잡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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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난 5월 초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함께. 잠시 머물려고 온 게 아니라 남은 생을 한국에서 보내려고 '영구 귀국'을 선택했다. 20대 초반에 떠났다가 60대 중반에 접어들어 귀향한 것이다. 아내는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암 수술을 받았고 꾸준히 치료중이다. 대수술이었지만 다행히 경과는 좋았다. 이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그도 아내의 간병과 집필 활동에 매진하느라 원형탈모증이 생겨 밖에서는 늘 모자를 쓰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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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발적 이민을 갔다가 42년만에 자발적으로 역이민을 선택한 이충렬 작가. 그의 인생 역정도 파란만장하다. 이민 1.5세대로서 경계인의 삶을 살았고, 생존하기 위해 다양한 직업군을 전전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문청(문학청년)'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1994년 <실천문학>을 통해 소설가로 등단했고, 2008년 이후 11년 동안 그림 관련 책 2권과 전기 6권을 펴냈다. 가장 최신작은 지난 5월초에 태어난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산처럼)이다. 수십년 동안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 시간을 쪼개 탄생시킨 작품들이니, 그의 삶은 억척스러운 주경야독이었다.

지난 6월 21일, 햇볕이 따사로운 오후 서울 성북동 '최순우 옛집'에서 이충렬 작가를 만났다. 늘 그렇듯이 아내와 동행했다. 그가 <간송 전형필> 다음으로 펴낸 전기가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김영사)다. 그는 간송만큼이나 혜곡에 대한 애정이 깊다. 작가 이충렬을 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드물다.

"나는 애초 자발적 이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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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작가 이충렬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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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에서 42년을 살다가 영구 귀국을 했다. 결심이 쉽진 않았을 텐데.
"그런 경우가 참 드물다. 일종의 역이민인데."

- 역이민은 대개 몇 년 살다가 돌아오는 경우 아닌가.
"참 특이한 케이스다. 나는 애초 '자발적 이민자'가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몰락했던 부모님이 이민을 가서 따라갔다. 1970년대에는 아이들이 많다보니 가족이민 장려 정책이 있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해외로 나가라며 남미에 땅을 사서 농사짓게 해주고 그랬다. 브라질·파라과이 이민이 그렇게 (국가가 나서면서) 시작됐던 거다. 나도 첫 도착지는 파라과이 농업 이민이었다. 브로커를 잘 만나면 초청장을 받아 미국으로 이민 갔을 텐데. 우리 가족은 미국 이민에 실패했다.

부모를 따라온 이민자를 1.5세대라고 부른다. 이민 1세대도 아니고, 외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20대 초반에 이민을 간 나는 늙은 1.5세대다. 그러다보니, 늘 '내 의지와 관계 없는 곳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머무는 이곳이) 내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게 1세대와 1.5세대의 다른 점이다. 아주 어린 시절에 가면 적응이 될 텐데, 머리가 굵은 뒤에 가니까 잘 안 되더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장의 의무를 다하려고 앞만 보고 살았다. 아이들이 다 컸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가도 할 일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업작가로 먹고 산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그런데 지난해부터 집사람도 나도 미국에서 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기본 경제력이 생긴 거다. 한국에 가면 나의 글쓰기 활동 영역도 넓어지고, 강연이나 독자들과의 만남도 편해지고. 집사람도 대수술을 했지만, 1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됐고.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를 하더라. 의료보험 혜택을 받으려고 한국에 온 거 아니냐고.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아내는 미국에서 수술과 치료를 다 받았고, 미국 보험도 아직 살아있는데도. 처음엔 그런 얘길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민폐를 끼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요즘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남은 인생을 창작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한국이 나을 것 같아서 영구 귀국을 선택했다."

"내 책 읽은 독자 만나면 고향 친구처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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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작가 이충렬씨가 집필한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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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작가는 예전에도 새 책을 펴낼 때면 한국에 들어왔다. 집필 마무리 작업을 하기도 했고, 책이 발간되면 독자들과의 만남이나 강연을 다녔다. 이번에는 영구 귀국을 염두에 둔 탓인지,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이 발간되기 전부터 독자들과 만나는 강연 신청을 받았다. 독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거마비만 줘도 괜찮다고 했다. 다만, 아내와 동행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지난 5월 초부터 시작된 독자들과의 만남은 한 달 반 동안 25차례 진행됐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그동안 전국 각지의 독자들을 만나봤는데.
"(작가로서) 가장 보람있고 반가울 때가 독자들과의 만남이다. 내 책을 들고 있는 독자를 만나면 마치 고향 친구를 만난 것 같다. 전국 '북 투어'를 다니면서 굉장히 뿌듯했다. 계속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자극을 받는다. 내 책을 읽고 강연까지 와주는 독자들을 보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맙고 반갑다."

- 북 투어를 다니면서 가장 인상에 남은 강연과 독자들의 질문은 무엇이었나.
"두 군데가 인상적이었다. 제일 열기가 뜨거웠던 곳은 충주 '책이 있는 글터'라는 서점에서 주최한 강연이었다. 45명쯤 참석했는데, 모임 공지를 한 지 한 시간만에 거의 마감됐다고 하더라. 참석자의 2/3가량이 중·고교 사서 선생님들이었다. 이 분들이 갖고 있는 책 가운데 가장 많은 게 권정생 선생의 책이었다고. 그러다 보니 권정생 선생이 대체 어떤 삶 속에서 이런 책들을 썼는지 궁금해했다. 열기가 뜨거웠고, 질문들이 구체적이었다.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권정생 선생은 생전에 100여 편의 동화책, 시집, 산문집 등을 펴냈다. <녹색평론>과 <창비>에도 글이 실렸다. (그의 작품 연보를 아는 분들이다 보니) 동화를 쓰던 분이 어떻게 환경운동, 반전, 반핵 등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는지 그 배경을 묻기도 하고. 강연이 끝나고도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작가와 독자의 깊은 교감이 이뤄졌다."

- 인상 깊었던 다른 한 곳은 어디였나.
"괴산의 '숲속 작은 책방'도 좋았다. 그곳은 진짜 시골이다. 괴산 시내에서도 차를 타고 산 속으로 20여 분을 들어와야 한다. 그런 외진 곳에 40명가량이 모였다. 이곳도 금세 마감이 됐다고 하더라. 참 튼튼하게 지역 독서운동을 만든 곳이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강연을 하는데, 한 시간 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강연을 하다 보면 눈빛을 느낀다. 슬라이드 자료 사진을 보여주는데, 책에 없는 내용이 나오니까 귀신같이 알고 사진을 찍더라. 그걸 보면 안다. 책을 읽고 오신 분들인가, 아닌가를. 그날 강연에는 농사짓는 분들도 많았다. 그 분들은 권정생 선생의 가난했던 농촌의 삶이 동화로 나타나는 과정을 궁금해했다. 그러다 보니 책 속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간송 전형필> 준비하면서 그림 애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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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작가 이충렬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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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송 전형필>의 인기 때문인지, 그 책 전후로 그림 관련 책을 2권 펴냈다는 사실은 잘 안 알려져 있다. <간송 전형필>은 2010년,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은 2008년, <한국 근대의 풍경>은 2011년에 발간됐다. <간송 전형필> 전후로 그림 관련 책이 끼어있다. 어떤 이유였는지 궁금하다.
"하나는 그림 수집, 또 다른 하나는 근대 그림을 소개하는 책이다. '오마이블로그'에 연재했던 글들이 섞여 있다. 애초 김영사에서 책을 내자고 했던 건 <한국 근대의 풍경>이었다. 계약도 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까, 내가 화가도, 미술학자도, 역사학자도 아니야. 그냥 그림을 모으다 보니까, 근대에 관련된 그림의 배경에 관해서 블로그에 썼을 뿐인데. 그게 활자화된 책으로 나온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림 관련 책을 펴낼 수가 있나. 한 마디로 자격미달이다. 출판사에 '아무리 생각해도 자격미달 같다'고 얘기했다. 그림을 갖고 근대를 이야기하는 게 무서운 일이라고. 출판사에서는 자신들이 커버하겠다고 쓰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건 출판사 생각이고, 나는 안 되겠다, 이걸 쓰면 욕만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주제 파악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림 애호가일 뿐이었다.

그래서 출판사에 다시 제안했다. 그렇다면 그림 애호가에 관한 글은 쓸 수 있겠다고. 당시 우리나라에 미술(그림) 붐이 일기 시작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화랑 문턱을 넘는 거다. 어떻게 화랑 문턱을 넘고, 어떤 그림을 집에 걸면 좋은지 이야기하고 싶다는 얘기를 전했다. 출판사가 내 의견을 받아들여 나온 첫 책이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이다. 50만~100만 원의 '소품'을 사서 감상도 하고, 덤으로 작은 투자도 할 수 있다는 발상이 큰 호응을 얻었다."

- <간송 전형필> 준비 기간이 상당히 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발간 시기를 보면 3년 동안 그림 책 두 권과 <간송 전형필>을 펴냈다. 어떻게 다른 성격의 책들을 동시에 준비했는지.
"미국 국경지역에서 하는 잡화점 장사가 안정돼서 1994년 소설가로 등단하고 글을 몇 편 썼다. 그런데 해외에 있다 보니까 소재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시·공간의 제약을 덜 받는) 역사소설을 떠올렸다. 왕이 아니라 화가들을 주인공으로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인에서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를 내세우고, 서인에서는 우암 송시열 계열인 겸재 정선을 등장시키는 거다. 그런데 스토리를 전개하려면 세 권짜리는 돼야겠더라. 나중에 포기했지만, 그 당시 겸재에 관한 자료를 찾으려고 간송미술관을 자주 찾아갔다."

- 겸재 정선 자료를 찾으러 간송미술관을 자주 방문했던 때가 언제인가.
"1995년 즈음이다. 역사소설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간송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간송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까, 이 양반의 수집품이 조선 초기·중기·말기에 걸쳐 방대하더라. 그럼 어떻게 해? 공부해야지! 처음 간송 책을 내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너무 암담했다. (가게 일 마치고) 저녁에 꾸역꾸역 공부를 시작했다. (간송과 그의 수집품을 이해하려면) 청자의 발달사도 봐야 하고, 어떻게 해서 겸재의 진경산수화가 나왔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그때 문화적인 갈증이 생겨 작은 그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림 책과 간송 전기가 그런 준비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된 것이다. 10년가량 자료조사를 하면서 공부했다. 간송을 제대로 알려면 역사 공부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사동에 서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아야 하니까. 고서점에 관한 책도 봐야 한다. 책을 찍어냈다고 하는 내용이 나오면 활판 인쇄에 대한 지식도 얻어야 한다. 수집한 문화재도 어떤 건 기와집 1채, 또 어떤 건 기와집 4채 가격이다. 왜 가격 차이가 났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경매 기록도 마찬가지고. 일제 강점기 때 도굴 상황도 알아봐야 하고. 공부해야 할 게 굉장히 많았다."

"나는 아직도 '권정생'에서 못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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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작가 이충렬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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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가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 연기에 몰입해 '메소드 연기'를 하면 촬영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그 인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오랫동안 한 인물에 몰입해야 하는 전기를 쓸 때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바로 이 질문이다. 나는 아직 '권정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몇 년 동안 준비하면서 한 인물의 전기를 쓰다 보면, 쓰고난 뒤에도 몇 달 동안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다음 작품을 쓰려면 빨리 빠져나오는 게 좋다. <간송 전형필>을 쓰고 나서는 10년 동안 준비한 게 끝났구나 싶어서 후유증이 심했다."

- <간송 전형필>을 쓰면서 다음 작품으로 '혜곡 최순우'를 쓰겠다고 생각했던건가.
"그렇다. <간송 전형필>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간송 시즌2를 할 수는 없으니까 최순우를 연결시키면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다."

- 그렇다면 최순우 전기를 쓰면서 김환기 전기를 구상한 건가.
"그렇다. 두 사람이 친구니까.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유리창) 이렇게 관련있는 인물들의 전기를 세 권 쓰다 보니,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도 같은 이미지의 캐릭터만 계속 연기하면 좋은 게 아니듯이. 문화를 빛낸 인물 세 명을 다뤘으니까, 이젠 사회를 빛낸 인물을 써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를 빛냈으면서 욕을 먹지 않은 사람이 진짜 드물더라. 우리가 너무 험난한 세상을 살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종교인이자 사회인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는 김수환 추기경이다. <아, 김수환 추기경>(김영사) 책을 쓰면서 (독자층을) 고민했다.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책이냐, 대중을 위한 책이냐. 결론은 대중을 위한 책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나라 전기의 모범이 될 수 있는 '벽돌 전기'를 한 번 써보고 싶었다.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이 950페이지인데, 김수환 추기경 전기는 1, 2권을 합쳐 1100페이지다."

☞ [이한기의 뷰] 전기작가 이충렬 인터뷰 2편 이어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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