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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국가가 징역 3만6000년을 선고했다
글쓴이 : 시냇물 날짜 : 2018-06-30 (토) 21:05 조회 : 357
국가가 징역 3만6000년을 선고했다
"대체 복무 없는 처벌, 헌법불합치"... 전기 맞은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
2018.06.30 18:23:42
국가가 징역 3만6000년을 선고했다

"저의 행동은 명백히 현행 실정법을 어기는 것이기에 범죄자로서 처벌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기꺼이 저는 양심적 행위의 대가를 받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가혹한 것이어서 제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오점을 남기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제 양심의 울림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이웃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라는, 평소의 소신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2001년 12월 17일, 스물일곱의 한 청년은 범죄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니었다. 오히려 살인 방법을 습득하기를 거부했다. 군대는 살인 훈련을 하는 곳이었다. 불교 신자이자 평화주의자인 오태양 씨는 차마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신체 건강한 남성에게 주어지는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것이었다. 

신성함을 거부한 대가는 컸다. '범죄자', '국가 반역자' 취급을 받았다. 병역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돼 결국 법정 구속됐다. 오 씨는 그렇게 '한국 최초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서 수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쟁없는세상


1호이자 1595번째 양심적 병역 거부자 

병역 거부 선언은 오 씨가 최초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병역 거부를 했던 이는 이미 많았다. 오 씨는 1595번째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다. 

최초의 병역거부 처벌 사례는 일제 시대 때 벌어졌다. 1939년 일본은 조선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 38명을 체포했고, 5명이 옥사했다. 이때에는 조선인에게는 시민권이 없어 병역이 의무가 아니었던 터라 병역법이 아닌 치안유지법과 불경죄가 적용됐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에 대한 법적 규제가 본격화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부터였다. 함석헌의 평화주의에 영향을 받은 신학생 홍명순은 1957년 병역을 거부해 1년 4개월간 복역했다. 이후로 숱한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인들이 집총을 거부하면서 군형법상 항명죄로 처벌받았다. 

5.16 군사 쿠데타로 국가를 장악한 박정희 정권은 병역 거부자들을 그 어떤 범죄자보다도 엄벌했다. 1960년대 안식교원인 최방원은 7년 6개월간 징역살이를 했다. 당시 군형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받아 만기 출소하면 다시 소집돼 같은 실형을 선고받는 악순환을 거듭한 결과였다. 

1970년대 들어서 '입영률 100%'를 목표로 한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병역기피자와 그 부모가 이 사회에서 머리를 들고 살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군사 정권은 장기 복역으로도 병역 거부 움직임이 수그러들지 않자 급기야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회 장소를 급습해 징집 대상자로 보이는 청년들을 군부대로 연행한 후, 집총을 거부할 시에 구타를 가하는 식이었다. 이춘길·정상복·김선태·김종식·김영근 등 5명의 여호와의 증인 청년이 구타를 당한 뒤 목숨을 잃었다.  

민주화 이후 병역 거부자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은 사라졌다. 그러나 군사 문화 잔재가 남아있던 1990대, 정부는 군형법상 항명죄 처벌을 상향 조절했다. 당시 군 복무가 30개월에서 26개월로 줄어들었음에도 국회는 '군의 발전 추세에 따라 현행 군형법상 비현실적인 법정형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려는 것'이라는 이유를 댔다. 그러면서 1994년 군형법이 개정되며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은 법정 최고형인 3년으로 고정됐다. 

그리고 2001년, 오 씨가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을 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 '양심의 자유'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병역 거부 문제가 특정 종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모든 이의 인권 문제임을 강조했다.  

"'그 어떠한 명분으로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따라서 전쟁과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어떠한 군사훈련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라는 개인적 서약은 제 삶에 있어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을 지키고자 할 경우 저에게 돌아올 대가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오 씨의 다짐은 동시대의 다른 청년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연합뉴스


"평화를 원하는 사람 말고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감옥에 가야 합니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오해의 벽은 높았다. 세상은 그들을 '병역 기피자'라고 불렀다. 평화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2003년 10월 18일,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전 파병을 결정했다. 전 사회가 격론에 휩싸였던 그 때,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에 기록될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휴가 중이던 현역 국군 장병이 휴가 복귀를 거부하고 파병 반대를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관련기사 : 현역 군인, "이라크 파병반대" 양심선언) 

스물 두 살의 육군 이병 강철민 씨는 그해 11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이등병의 편지'를 낭독했다. 

"자국의 군대가 자국의 국토와 자국의 국민을 보호하는 것 이외에 침략전쟁의 도구로 쓰여 진다면 그것은 이등병인 제가 아니라 어느 누가 보아도 틀린 결정이라 생각됩니다.(중략)

어제는 이러한 저의 생각을 가족들과 마주앉아 이야기했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말씀드릴 때마다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시는 부모님의 눈동자가 저의 가슴을 쳤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파병 결정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자식 잃은 모든 부모님의 눈동자가 저의 가슴을 칠 것 같았습니다." 

현역 장병의 일탈 행위가 가져다준 충격은 대단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을 단순 '병역 기피' 시도로 폄훼하던 여론에 균열이 일었다. 병역 거부자들이 밝힌 '양심'을 다시 한 번 곱씹게 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 내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점도 알려졌다. 모든 종류의 군인 훈련을 거부하는 '보편적 거부'인지. 특정 전쟁에 대한 수행을 거부하는 '선택적 거부'인지, 총기 다루는 것을 거부하는 '집총 거부인지'. 강 씨의 경우는 이라크전 파병에 반대한 '선택적 거부'에 해당했다. 무엇이 됐든 거부 방식에 대한 선택 또한 병역 거부자 개개인의 신념에 따른 것임은 자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강 씨의 양심을 철창 안에 가두었다. 육군교도소에 수감된 강 씨에게 여러 갈래로 연대의 손길이 뻗쳤다.  

박노자 오슬로 대학 교수는 다음 해 2월 강 씨에게 공개 서신을 보냈다.

"강철민님의 의거(義擧)가 이 의식이 더 확산되는 하나의 계기가 됐습니다. 님을 비방하는 우민(愚民)의 수도 아직 적지 않지만 님의 행동을 보고 '미국'과 '전쟁'의 문제에 대해서 진정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사람은 더 많습니다. 바른 일을 결행한 한 사람의 감방 생활의 어려움은, 결국 많은 이들의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관련기사 : 박노자 교수가 강철민 이병에게)

비슷한 시기, 강 씨의 수감 소식을 전해 들은 이라크 시민 135명은 연대서명을 하고 격려 글을 보내기도 했다. (☞관련기사 : 이라크 시민들, "강철민 이병 석방하라")

"평화와 자유를 원하는 사람 말고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감옥에 가야 합니다."(팔루자, 모로아) 
"강철민을 감옥에 넣은 것은 그가 이야기하는 '평화'를 감옥에 넣은 것입니다."(카라다 다흐 거리, 하이달 바하르) 

2008년에는 의경 소속으로 복무하던 이길준 씨가 경찰의 촛불집회 강제진압에 반대해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한 뒤 복역한 사건도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관련기사 : "그때 하얗게 타 버렸다. 내 안의 인간성이…") 

"방패를 들고 시민들 앞에 설 때, 폭력을 가하게 될 때, 폭력을 유지시키는 일을 할 때, 저는 감히 그런 명령을 거부할 생각을 못하고 제게 주어지는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략) 

이런 나날이 반복되고, 저는 제 인간성이 하얗게 타버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진압작전에 동원될 때도, 기약 없이 골목길을 지키고 있어야 할 때도, 시민들의 야유와 항의를 받을 때에도 아무 말 못하고 명령에 따라야 하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근무시간이 늘어나고 육체적으로 고통이 따르는 건 감수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제가 하는 일이 대체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인가를 생각하면 더 괴로워지더군요.(중략)

가해자로서, 피해자로서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 고민 속에 흐려져 가는 삶을 정립하는 방법은 저항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제 삶을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 늘 타협했을 뿐 자신 있게 저항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느껴지더군요. 이번 기회는 제 삶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느껴졌습니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많겠지만 제가 원하는 저를 찾아간다는 것은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프레시안(서어리)


'양심'은 정당한 사유가 아닌가 

매년 600명의 청년이 오 씨, 강 씨, 이 씨와 같은 길을 걸었다. 2018년 현재까지 병역을 거부해 처벌을 받은 사람은 1만98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의 수감 기간을 합치면 3만6000년이 넘는다.  

"양심을 가둬선 안 된다"는 요구가 높아졌음에도 이 사회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다루는 방식은 처벌 일색이었다. 대체복무 논의도 미미했다. 

처벌 근거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는 병역법 88조 1항이다. 이 법률 조항의 '정당한 사유'에 병역 거부자들이 주장하는 양심적 자유가 포함되는지가 관건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2004년 8월과 10월, 2011년 8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지난 28일 4(합헌)대 4(합헌) 대 1(각하) 의견으로 다시 한 번 같은 결정을 했다. 결론은 종전과 같았다. 그러나 내용이 달랐다. 헌재는 처벌 규정은 합헌으로 두면서도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않은 현행 병역법 5조 1항은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면서 "처벌조항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해석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사실상 처벌 문제의 책임을 법원으로 돌렸다. (☞관련기사 : 헌법재판소의 인권 시계가 작동하고 있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갔다. 사법부 내에서 이미 더러 의미 있는 판결이 있긴 했다. 2004년 서울남부지방법원 이정렬 판사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오모 씨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오 씨의 병역 거부 사유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언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최초의 무죄 판결이었다. (☞관련기사 : 법원, '양심적 병역거부'에 첫 무죄 선고

이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병역법상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오직 양심상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보호 대상이 충분한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심의 자유에 대해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와 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해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지 않는 자유 즉 윤리적 판단 사항에 관한 침묵의 자유까지 포괄한다"고 했다. 

항소심 첫 무죄는 그로부터 12년 뒤인 2016년에야 나왔다. 광주지방법원 김영식 판사는 2000년대 이후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대부분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은 하지 않은 점에 대해 '타협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현실적인 대책(대체복무제)이 있는데도 외면하고 있다. 떳떳하게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이들이 공동체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양심적 병역거부 2심 첫 무죄…대체복무제 수면위로)

그러나 이러한 1,2심 무죄 판결도 모두 결국 대법원에서 뒤집어졌다. 아직 단 한 차례도 대법원 무죄는 나오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헌재 결정으로 대법원이 달라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오는 8월 30일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열 예정이다.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헌법소원과 위헌 소송을 청구했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축하의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반도 평화 바람,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 논의할 때" 

달라진 남북 관계도 긍정적인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UN 인권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서 수감되어 있는 사람의 92.5%가 한국인이었다. 유엔은 꾸준히 한국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권고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같은 의견을 제기해왔다. 많은 전문가들이 '후진국형 상황'이라고 지적해왔다. 그럼에도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인식과 처우가 바뀌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남북 관계였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군력을 줄여선 안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평화 모드로 바뀌면서 병역 문제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8일 헌재 결정 후 기자회견에서 "최근 들어 한반도에 실질적인 평화가 이뤄질 수 있는 바람이 불고 있는데 바로 지금이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침해되고 억눌려왔던 인권에 대해 다시 한 번 논의할 때"라고 밝혔다.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을 지지해온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는 공동 성명을 통해 "오늘(28일)의 결정은 우리 사회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오늘의 결정이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선언한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진정한 의미에서 한 발짝 앞당겼다고 평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다가오는 8월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예정하고 있는 대법원은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에 따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여 무죄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방부 역시 헌법재판소 결정 직후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정책 결정 과정 및 입법 과정을 거쳐 최단시간 내에 정책을 확정하겠다"고 밝힌 만큼,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며 "국회는 상임위에 잠자고 있는 병역법 개정안을 신속히 통과시켜 하루속히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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