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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성완종 리스트’ 무죄의 비밀
글쓴이 : 시냇물 날짜 : 2018-06-12 (화) 14:37 조회 : 1474

[박래용칼럼]‘성완종 리스트’ 무죄의 비밀

박래용 논설위원

그날 새벽 성완종 회장의 전화기 너머 목소리엔 헉, 헉 하는 숨찬 호흡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북한산 길을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미 유서를 쓰고 서울 청담동 자택을 나선 그는 경향신문 기자에게 전화해 그동안 정치자금을 건넨 인사 8명을 폭로했다.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육성이었다. 수색에 나선 경찰은 북한산 형제봉 부근에서 숨진 성 회장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남기업 자금담당 임원 한모는 성 회장의 지시에 따라 현금 3000만원을 쇼핑백에 포장해놓았다. 보좌관 이모는 쇼핑백을 받아왔다. 운전기사 여모는 쇼핑백을 승용차 뒷좌석에 실었다. 수행비서 금모는 부여 이완구 후보 선거사무소에 도착한 뒤 성 회장으로부터 “차 안의 쇼핑백을 가져오라”는 전화를 받고 이완구와 독대 중인 성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한모→이모→여모→금모의 진술은 순차적으로 쇼핑백을 만들고 받고 전하는 데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검찰은 ‘2013년 4월4일 오후 4시30분 부여 (이완구 후보) 선거사무소 방문’이 기재된 성 회장의 일정표를 찾아냈다. 오후 3시51분 성 회장이 선거사무소에 거의 도착했고, 오후 5시8분 서울로 출발한다는 비서들끼리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도 확보했다. 성 회장의 승용차가 비슷한 시각에 부여 톨게이트를 들어오고 나가는 통행기록도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성완종 인터뷰’에 대해 “기자에게 녹음을 먼저 요청했고, 내용이 자연스럽고, 수사를 통한 진위 규명을 희망하고 진술한 점에 미뤄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하고 이완구에게 징역8월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인 서울 고법 제2형사부는 모두를 부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완구에 대한 강한 배신과 분노의 감정이 있었다”며 허위진술의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죽기 직전의 사람이 없는 말을 꾸며 죄를 씌우고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성 회장은 전화에서 허태열 7억·김기춘 10만달러·홍문종에게 2억원을 줬다고 했다. 이완구에게 돈을 줬다는 얘기는 그다음에 나왔다. 성 회장 품에서 발견된 메모에 이완구는 맨 마지막에 적혀 있었다. 이완구에 대한 배신과 분노, 적개심에서 인터뷰를 자청했다면 이완구는 맨 처음 거명되고, 맨 먼저 메모에 올랐어야 할 것이다. 성완종 메모에 적힌 8명 중 금액이 공란인 정치인은 이완구, 이병기 둘뿐이었다. 

성 회장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완구에게 준 정치자금이 얼마냐는 질문을 받고 “한, 한, 한 3000만원”이라고 했다. 2심 재판부는 ‘한’을 세 차례 반복한 점에 비춰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성 회장의 더듬거리는 화법은 통화의 다른 부분에서도 여러 차례 나타나 있는 단순한 언어습관이었지만, 재판부는 무시했다. 재판부는 비서진의 진술도 모두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성 회장은 8명 모두를 해코지하기 위해 거짓된 메모와 육성을 남기고 떠난 모략꾼이 됐다. 비서들은 죽은 성 회장을 위해 애먼 사람을 잡는 위증사범이 됐다. 2심 재판부는 홍준표 항소심도 함께 담당했다. 재판부는 홍준표 재판에서는 ‘성완종 인터뷰’의 신빙성을 인정하고, 이완구 재판에서는 부정했다. 한 재판부가 같은 증거를 놓고 정반대로 판단한 것이다. 그 재판부는 증거능력이 인정된 홍준표도 무죄, 증거능력을 부정한 이완구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장과 일반인의 사회적 통념은 다른 것 같았다.

그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양승태 대법원’ 체제에서 작성된 법원행정처 410개 파일 중엔 ‘성완종 리스트 영향분석 및 대응방향 검토’란 문건도 있었다. A4용지 17쪽 분량이다. 표지엔 ‘대외비’가 찍혀 있다. 문건에는 “리스트 신빙성→상당함”이라고 적혀 있다. “성완종 리스트 등으로 인하여 당분간 국정장악력 및 추진 동력이 크게 감소될 가능성 있음”이라고 분석했다. ‘BH(청와대) 협조 및 우호관계 유지방안’이란 제목에는 “리스트 수사와 관련한 협조 방안→당분간 한계. 이미 계속 중인 주요 관심사건 처리→BH 측의 입장 최대한 경청하는 스탠스로 우호적 관계 유지”라고 했다.


‘성완종 리스트’ 판결에 음습한 거래가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합리적 의심은 지울 수 없다. 청와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법원은 죽은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망자(亡者)는 많은 말을 했지만,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법관에게 재판은 증거라는 도구로 진실의 화석을 캐는 작업이다. 법원은 증거를 버렸고, 진실을 캐지도 않았다. 사법정의란 당연히 행해져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성완종 리스트’ 무죄 판결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6112105025&code=990100#csidx29352d9919a3eecb0e5adc0aff97f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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