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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민족의 진로, ‘심청전’에서 찾다 <기고> 김상일 전 한신대학교 교수
글쓴이 : 시냇물 날짜 : 2018-06-11 (월) 11:37 조회 : 1953
민족의 진로, ‘심청전’에서 찾다<기고> 김상일 전 한신대학교 교수
김상일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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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11  0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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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 / 전 한신대학교 교수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면 고기를 먹을 수 있고,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할 것이라고 한다. 9일 캐나다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 "그렇지만 그건 '원타임 샷'"이라고 말했다.

몽은사 화주승이 심청이네 집을 찾아와 공양미 3백석을 시주하면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해 주겠다고 흥정하는 장면과도 같아 보인다. 화주승의 말에 아버지도 심청이도 동의한다. 여기서 화주승도 인간을 제물로 요구하는 괴신의 말을 대신 전한 것이다.

그러나 심 봉사의 눈은 바로 떠지지 않았다. 몽은사란 절은 지상 어디에도 없고 인당수란 바다 역시 오대양 육대주 어디에도 없다. 심청이는 남경 상인에게 팔려가 인당수 물에 제물이 된다. 그러나 심청이는 송나라 황후가 되어 지상에 다시 돌아온다. 왜 하필이면 남경 상인이고 송나라인가?

심청전 저자가 조선후기 조선사회 구조상 도저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이 고전문학 설중환 교수(전 고대 국문과 교수)의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판소리의 대미를 장식하는 ‘심청전’은 일본에도 중국에도 없는 우리 고유의 문학장르이다. 삼국유사의 거타지 설화에 유사한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이 대본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심청전을 읽을 때에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심청이가 죽은 다음에 왜 곧 바로 심 봉사의 눈이 떠지지 않았느냐이다. 심청이 자신도 황후가 돼 전국에 봉사들을 다 모아 잔치를 벌이는 순간까지도 자기 아버지가 장님 그대로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전국 장님 잔치를 베풀기로 했다.

심청이 인당수 물에 몸을 던지는 순간 왜 바로 즉시 심 봉사는 개안되지 않았는가? 이것이 심청전을 읽는 화두로 삼아 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비핵화를 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북한의 행보에 대해서도 감사의 뜻을 밝혔다. 마치 화주승이 심청에게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한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엄청난 것, 아버지의 개안이 선물로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너무도 닮아 보인다.

작품의 장면에서 몽은사도 화주승도 사라지고 심 봉사의 막나니 행각이 이어진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뺑덕 어미와 한 살림 차리고 퍼 마시며 사는 장면이다. 조선 후기, 딸자식은 아예 가문의 호박 넝쿨이었다. 팔아버리면 부모들은 한 평생 호의호식 하며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심청전에는 그 안에 한국 전통문화와 종교사상 그리고 사회상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지금 생각할 때에 천지지간 어떤 나쁜 존재가 산 사람을 제물로 받아먹고 풍랑을 잠재우고 말고를 좌지우지 한단 말인가? 그리고 절에는 아미타불, 관세음불,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는 데 그 어느 부처님도 인간에게 인공제물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종교 문화가 적어도 신석기 농경 시대 전후로 다반사로 그리고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그래서 심청전의 배경에는 저급 종교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저급한 행위가 국제 정치란 미명하게 지금도 그대로 자행되고 있다. “너 가진 것 내 놓아, 그러면 잘 지켜 줄게.”

조선 후기 유교 문화의 효사상은 심청에게 손가락질 하며, 몸을 제물로 바쳐서라도 아버지 눈을 뜨게 해야 한다고 청을 한 골로 몰고 갔다. 마야 문명권에서도 인공제물 희생자들이 스스로 이러한 문화적 귀신들림 enchanted에 즐겨 응했다고 한다.

지금 전 세계는 한 나라가 갖는 핵을 향해 희생재물로 삼으려 한다. 2017년 9월 11일 유엔 안보리 결의를 한 번 들여다 보자. “북한의 제6차 핵실험에 대응한 대북제재 결의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 대북 원유 수출은 기존의 연 400만 배럴에서 동결하고 석유제품은 연 200만 배럴로 제한하는 등 유류공급 30%가량 차단. 북한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섬유 제품 수출 전면 금지. 북한 노동자 고용시 안보리 인가가 필수이며 기존 노동자는 계약 만료시 송환한다와 같다.”

조선후기 사회 효사상이 심청이를 향해 너는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빠져야 해, 하는 것과 무엇 하나 다른가? 여기에 원시 종교 형태가 뒷받침한다. 하버드대 하비 콕스 교수는 이를 문화적으로 귀신들림이라고 했다. 여자에게 너는 처녀성을 지켜야 해 안 지키면 인생 끝장이냐 하는, 이 무서운 문화가 만들어 내는 귀신들림. 허울 좋게 심청에게 부쳐주는 ‘효녀 심청’.

그러나 심청전 작가는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한 것은 심청의 효심 때문도 아니고, 공양미 삼백석 때문도 아니라고 적나라하게 소설의 행간을 통해 샅샅이 지적해 놓고 있다. 심청전 작자가 송나라에 엇 빗댄 이유는 다름 아닌 심 봉사가 눈 뜬 이유를 유교도 그 어떤 종교 문화의 영향도 아닌 민중이란 변수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심청전 해석은 이것을 찾아 내지 못했다.

심 봉사가 눈을 뜨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주인공은 뺑덕 어미이다. 그리고 더 큰 주인공은 심학규 자신이다. 공양미 삼백석과 개안 관계를 결코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듭 말해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했지만 바로 개안되지 않았고, 심청 자신도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황후가 된 다음에 전국 장님 잔치를 벌이지 않았지 않는가. 만약에 그러한 원인-결과를 알았더라면 아버지는 개안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잔치 자체를 연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아무튼 심청전은 이러한 문화적으로 귀신 들린 마술과 신화에서 인간의 의식 구조를 해방시킨다. 악처 크산티페가 소크라테스를 만들었듯이 악처 뺑덕 어미의 구박과 푸대접이 심 봉사로 하여금 눈을 떠야 하겠다고 내면에서 악쓰게 만들었다. “아서라, 아서라, 이년! 다시 너를 생각하면 개자식이다”라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심 봉사 자신이 다리 위에서 떨어져 사경을 헤맨 사건은 이미 내가 눈을 떠야 하겠다는 악을 쓰게 만들었다. 차라리 양처인 심청의 모인 곽씨 부인이 남편을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먹을 것 입을 것 다 가져다 주며 호의호식 하게 한 것이 심 봉사의 개안 의욕을 약화시켰다. 심청이 7세 이전에는 아버지를 지팡이로 끌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공양해 준 것이 더욱 심 봉사를 유약하게 만들었다. 남경 상인에 심청이가 끌려 간 것 자체가 심 봉사에게 의지처 어느 하나 없게 만들어 버렸고, 바로 이것이 심 봉사의 개안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다시 말해서 심청이가 아버지 곁을 떠난 것이 아버지를 눈뜨게 만들었다.

하비 코스는 문화적으로 귀신들린 농경문화 사회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자유를 준 것이 다름 아닌 도시화와 세속화라고 한다. 농촌 마을에서 처녀성의 마술에서 해방감을 주는 것이 도시화이고 종교의 신성화에서 탈문화한 것이 세속화이다. 심청전 저자가 바로 구한말 조선 사회의 탈문화와 탈종교화한 것이 아닌가?

21세기 쌩 대낮에 마치 치첸잇사 마야 유적지에서나 벌어질만한 인공 제의가 치러지고 있다. 너의 인신을 다 바쳐, 그러면 너에게 보상이 주어져, 명심해.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아닌 르네 지라르의 ‘일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 ‘일인’은 희생양이 되며 이 순간부터 만장일치적 집단 폭력과 린치가 발생하며 드디어 희생양은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이를 르네 지라르는 ‘희생양 메카니즘’이라고 했다.

2018년 6월 12일 오전 10시 싱가포르 상데리쟈 호텔에서 북.미 두 지도자는 만난다. 그 동안 북한이 굶주려 가며 개발한 핵과 미사일을 제물로 바치고, 그 대가로 체제 안전과 경제 지원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기독교 국가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가? 아니라고 본다. 그 이유는 그런다면 그것은 구약 전통이 그렇게 부정한 바알 종교의 인공 제의 풍습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은 취임식 때에 성서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한다. 그런데 과연 미국이 기독교 국가가 맞는가? 구약과 신약 속에도 인공 제의에 관한 설화들이 많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잡아 제물을 바치려던 장면, 사사들 가운데 입다가 전쟁에서 승전하고 돌아와 딸을 신에게 제물로 바친 일화들. 구약도 대예언자 이전에는 이런 농경문화적 종교 전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 인공 제의의 의의는 완전히 변한다. 인간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신 자신이 제물이 되는 것이고, 그러한 신이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인공 제의 연구 권위자인 르네 지라르가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가 되어 가톨릭으로 입교한 이유가 바로 신 자신이 제물이 된다는 기독교 정신에 감탄을 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진정한 이러한 기독교 정신을 구가하는 국가가 되려면 당연히 자기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핵과 미사일을 평화의 제단에 제물로 바쳐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신석기 농경문화의 유산이 인간의 피와 살을 빨아 먹는 무서운 바다의 용 같은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이것은 시대의 역행이요 인류 정신사의 퇴보이다.

이러한 잘못을 범하고도 자기가 무슨 잘 못을 범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바보 존재들이 벌이는 잔치를 ‘바보제’라고 했다. 부디 며칠 후에 벌어질 잔치가 바보제가 아니기를 바란다. 바보제의 대표적인 예는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 예수를 한 번 시험에 걸어 보려 하자, 예수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먼저 돌을 던지라”고 했다. 핵과 미사일 문제에 미국과 다른 강대국들은 죄가 없는가?

우리 심청전은 세계 어느 경전에도 없는 고차원의 정신세계로 우리를 몰입케 한다. 심 봉사는 천신만고 끝에 그것도 잔치의 마지막 날에 그리고 해질 파장일 무렵에 저는 다리를 끌고 나타났다. 심청이는 걸어 들어오는 장님이 자기 아버지인 것에 놀라고 아직 장님인 것을 보고 너무 실망한다. 그래서 다시 인당수에 몸을 던질 생각까지 한다. 실망과 탄식과 함께 ‘아버지’ 부르는 한 마디 부르는 소리에 심 봉사는 그것이 딸의 목소리인 것을 확인하고 ‘청아’ 하고 부른 그 순간 심 봉사의 두 눈은 활짝 뜨인다.

인당수란 바다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체의 혈자리 가운데 양 눈 사이에 있는 중간 자리를 ‘인당印堂’이라고 한다. 제 3의 눈을 두고 하는 말이다. 화주승이 말하는 인당수란 바로 이 제 3의 눈이었다(설중환 교수의 글 가운데서). 그리고 인당수까지 오고 가는 과정 자체는 과학이다. 다시 말해서 심 봉사의 스스로의 주체적 노력 그 자체가 눈을 뜨게 했다. 뺑덕 어미도 심청이도 조력자일 뿐이다.

그런데 심청전의 핵심은 심 봉사가 혼자 눈이 뜨는 데에 그 종착역이 있지 않았다. 심청이 부른 봉사들은 자기 아버지뿐만 아니었다. 전국에 있는 모든 봉사들이 한 날 한시에 눈을 떴다. 만약에 심청이 자기 아버지만 눈 뜨게 하려 했다면 자기가 살던 동네 도화동으로 사람을 보내 아버지를 데리고 왔을 것이다. 구태여 왕에게 간청해 전국의 모든 봉사들을 다 초대하는, 즉 봉사 잔치를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맹인들의 인구가 전국에 15만 정도이라 하니 당시만 해도 수만의 맹인들이 전국에 있었을 것이다. 이 많은 맹인들을 모두 며칠간 먹이고 재운다는 것은 여간 큰 부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무기 같은 악귀의 먹잇감이 된 심청, 그러나 그 이무기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심청은 자기 목숨까지 바친 그 대가에 대하여 어느 한 곳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았다. 악귀에게 원한을 품기는커녕 그 악귀에게 몸을 다시 팔아서라도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 한다. 이러한 자기를 끝까지 비울 때에 큰 효가 실현되었다. 자기 아버지뿐만 아니라 만인의 눈을 다 뜨게 했다.

윤이상 곡 ‘대심청’이란 오페라가 독일에서 공연되었을 때에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냈으며, 관중들은 한결같이 자기들이 잘 아는 예수의 화신이 ‘심청’이라고 했다 한다. 심청이를 한갓 ‘효녀 심청이’로 미화함으로서 얼마나 많은 보화를 그 속에서 우리는 잃고 있는가? 정현식 교수는 ‘큰 효로서 작은 효를 덮어준다以大孝喪小孝’고 했다.

인당수 물에 심청이 몸을 던짐으로 아버지뿐만 아니라 모든 장님들이 다 눈을 떴듯이 결코 그것은 무위와 허망한 것이 아닌 남북의 평화와 전 세계 전쟁 없는 평화, 제 3의 눈이 열리는 것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주적이라곤 조금도 행사할 수 없던 심학규, 심청이의 아버지, 그는 다리에 떨어져 골절이 되고, 뺑덕 어미 잘못 만나 가진 것이라곤 다 탕진했지만, 스스로 서는 의지와 용기로 눈을 떨 수 있었다. 이 심 봉사 같은 우리 민족, 우리끼리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심청전은 말해 주고 있다.

미국 방송들은 실시간 북미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고 있다. ‘김정은’을 자막에서 ‘Jung Un Kim’으로도 ‘Jong Un Kim’으로도 표기한다. 그러나 ‘Jung’은 거의 미국에서 심리학자의 융의 경우와 같이 ‘융’으로 발음한다. 그나마 가깝게 발음 하려면 ‘Chung’(청)이라고 해야 한다.

심청을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은 淸과 晴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맑다는 뜻이고 후자는 ‘눈망울’이란 뜻이다. 후자는 ‘정’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이 글은 전 고대 국문과 설중환 글을 참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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