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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11) 바리공주는 우리에게 불가를 경계했고, 저승행 티켓을 선물했다
글쓴이 : 시냇물 날짜 : 2018-02-11 (일) 21:39 조회 : 5797

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11) 바리공주는 우리에게 불가를 경계했고, 저승행 티켓을 선물했다

ㆍ함흥 바리공주의 비밀

무속신화는 이승에서 화해를 도모하는 다른 <바리공주>와 달리 저승에서 비극을 풀고 거둔다. 사진은 서울 지역의 상류층이나 부유층이 행했던 전통적인 망자천도굿인 서울새남굿을 서울새남굿보존회 회원들이 재현하고 있는 모습이다. 바리공주로 분장한 무당이 옛 왕녀의 화려한 복식차림을 하고 있다. 아래 책 사진은 작고한 김수남 사진작가가 찍은 함경도 망묵굿 사진이 담긴 단행본. 이수형 작가 제공" style="background: none 0px 0px repeat scroll transparent; border: none; margin: 0px; outline: none 0px; padding: 0px; vertical-align: top; max-width: 710px;">

함흥 <바리공주> 무속신화는 이승에서 화해를 도모하는 다른 <바리공주>와 달리 저승에서 비극을 풀고 거둔다. 사진은 서울 지역의 상류층이나 부유층이 행했던 전통적인 망자천도굿인 서울새남굿을 서울새남굿보존회 회원들이 재현하고 있는 모습이다. 바리공주로 분장한 무당이 옛 왕녀의 화려한 복식차림을 하고 있다. 아래 책 사진은 작고한 김수남 사진작가가 찍은 함경도 망묵굿 사진이 담긴 단행본. 이수형 작가 제공

</바리공주>

우리 무속신화 가운데 그래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리공주>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더 익숙하다. 어린 시절에는 옛이야기 책에서 읽었을 테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문학 교과서를 통해 배웠을 테니까. 병든 부왕을 살리기 위해 저승 여행을 떠나는 공주 이야기. 윤리 교과서에 실릴 만한 효녀의 이야기지만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리공주 신화의 단면일 뿐이다.

바리공주가 아버지 병을 고칠 약을 구하러 저승에 갔다고? 그렇지 않다. 바리가 효성이 지극한 공주님이라고? 천만에, 꼭 그렇지는 않다. 부친을 되살린 바리공주가 무당들의 조상신이 되었다고, 또는 천상의 신이 되었다고? 아니, 그렇지 않다. 바리는 효성이 특별한 딸이 아니었다. 바리는 아비가 아니라 ‘어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목숨을 되살리기 위해 ‘천상’으로 갔다. 바리는 거룩한 신이 되지 않고 우리가 죽듯이 죽었다. 비명횡사하여 귀신이 되었다. 그런 바리공주가 어디에 있느냐고? 함경도 함흥에 있다. 

옛날 나무가 말을 하고 구렁이가 혀를 놀릴 때였다. 수차랑 선비는 옥황상제의 벼루를 떨어뜨려서, 덕주아 부인은 세숫대야를 떨어뜨려서 인간 세상에 귀양을 내려온다. 둘이 부부가 되어 살았는데, 늦도록 자식이 없어 한탄하다가 지리박사(점쟁이)를 찾아 점을 치고 백일기도를 한다. ‘첫 자식이 아들이면 구남매를 낳아 개국의 치를 떨고, 첫 자식이 딸이면 칠남매를 낳아 구족이 망하리라’는 점괘가 나온다. 

이렇게 시작되는 함흥 <바리공주>의 아버지는 왕이 아니다. 아비는 천상의 선관(仙官)이고, 어미는 선녀였다. 그러니 바리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구남매, 칠남매는 무녀 지금섬이 잘못 읊은 것이다. 문맥상 ‘첫째가 아들이면 아들 아홉을, 첫째가 딸이면 딸 일곱을 낳으리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아들을 낳으면 나라를 세워 이름을 떨치고 딸을 낳으면 온 집안이 망한다니, 아주 고약한 점괘다. 점괘에 투영된 남성중심적 세계관이 심히 불편하지만 지난 현실의 그림자라는 점, 아니 여전히 암약하고 있는 남근주의의 투사라는 점을 고려하면서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함흥 <바리공주>에는 이런 세계관이 시종일관 관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점괘대로 부인은 내리 일곱 딸을 낳는다. 한데 막내가 태어나기 전 아비 수차랑은 ‘아들을 낳으면 편지를 하고, 딸을 낳으면 용늪에 버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승천한다. 이제 아비는 사라지고 이야기는 모녀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비의 부재!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리공주>와 점점 멀어진다.

남편의 명대로 덕주아 부인은 막내딸을 돌함에 넣어 용늪에 버린다. 용늪은 천상과 지상의 경계에 있다. 다른 지역의 <바리공주>에 보이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황천강에 해당한다. 용늪은 천상의 빨래터, 마침 빨래하러 왔던 천상 수궁용왕 부인에 의해 구출된다. 논리적으로는 수긍이 안되지만 왕비는 자기가 낳은 아이라 속이고 기른다. 수궁용왕의 딸이라 ‘수왕이’라는 이름도 얻는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무당이 수왕이를 ‘바리덕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수왕이는 바리공주의 함흥식 별명이다. 수왕이는 옥황에서 잠시 ‘공주’가 된다. 

하루는 옥황상제가 조회를 소집했는데, 수궁용왕은 관복이 없어 식음을 전폐한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수왕이는 하룻밤 새 관복을 지어낸다. 관복을 입고 회의에 참여한 수궁용왕은 칭찬을 받았지만 동시에 오제용왕한테서 수왕이가 친자가 아니라는 말을 듣는다. 화가 난 수궁용왕은 수왕이를 쫓아낸다. 

이런 장면은 다른 <바리공주>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연관성을 찾아보자면 남편의 조복(朝服)을 지어 바쳤다는 선도성모 이야기(<삼국유사>), 천상의 기울어진 전각을 수리하러 떠나는 남편 궁산이를 위해 하룻밤 새 구슬옷을 짓는 부인 이야기(함흥 무속신화 <일월노리푸념>) 정도다. 동해안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 옥황상제와 용왕들로 구성된 어전회의 장면도 새롭다. 함흥 <바리공주>는 다른 지역과 계보가 다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천상에서 축출된 수왕이는 마침내 모친을 찾아간다. 버릴 때 끊어 두었던 엄지손가락으로 친자식임을 확인받은 수왕이는 드디어 저 유명한 저승(서천서역국)행에 나선다. 그런데 길에서 만난 인물들은 무상으로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방아 찧던 할머니, 다리 놓던 생원, 실 씻던 할머니, 체 쓴 할머니 등등은 모두 ‘자신의 죄상이 무엇인지’ 물어봐 달라는 요구를 한다. 왜 이런 ‘개고생’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약속을 해야 길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 중생의 절실한 물음을 담고 있는 이런 대목도 다른 <바리공주>에는 없다. 

없는 게 또 있다. 수왕이는 마지막으로 사냥꾼에게 길을 묻다가 사냥꾼의 장손한테 붙잡힌다. 장손은 계속 겁탈을 꾀한다. 그러나 수왕이는 조상 제사를 핑계로 피하다가 꾀를 발휘하여 마침내 탈출한다. 우아한 바리공주의 이미지를 구축해 놓고 있는 다른 지역 <바리공주>에는 이런 ‘폭력적인’ 장면이 나타나지 않는다. ‘미투’ 운동의 빌미가 될 만한 성폭력 행위를 지워 놓은 셈이다.

축출에 탈출을 더한 수왕이는 처음 버려졌던 용늪을 찾아가 통곡한다. 통곡에 반응한 옥황상제가 보낸 ‘덩’을 타고 승천한 수왕이는 옥황의 손자와 결혼하여 아들 열둘을 낳는다. 한데 저승에 가려던 수왕이가 천상으로 올라가는 장면도 낯설지만 약수와 환생꽃을 얻는 방법도 특이하다. 남편을 다독여 천상의 꽃밭 구경을 나간 수왕이는 몰래 꽃들을 꺾어 몸에 감춘다. 도둑질이다. 이 역시 공주의 우아미와는 거리가 멀다. 약수를 어디서 퍼 올렸는지 모호하지만 세 바가지를 퍼 놋동이에 담는다.

귀환길에 수왕이는 길을 일러 주었던 이들의 죄상을 고지해 주고 장례행렬을 만나 죽은 모친을 살린다. 바리데기는 부활한 모친과 집으로 들어가는데, 소식을 들은 언니들이 모두 도망친다. 약수행을 거부했던 잘못, 모친을 실은 상여를 따라가는 대신 집에 남아 재물 다툼을 했던 자신들의 잘못이 부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장면이 아주 이상하다. 함흥 <바리공주>에서 가장 희한한 장면이다. 

“얘들아, 내 저승 가 보배를 가지고 왔다. 기물(器物)을 나눠 줄 것이니 모두 나오너라.”

기물을 나눠 준다고 하니 다락에서 내려온다. 쥐구멍에서 나온다. 먼지가 뿌연 얼굴로 오백나한처럼 쪼르르 모여 앉았다. 맏딸부터 차례대로 상문살(喪門煞), 극체살(克體煞), 괴강살(魁?殺)을 주니 여섯 딸이 다 죽는다. 여섯을 다 구덩이를 파고 묻고 나자 바리덕이가 아프기 시작한다. 바리덕이는 삼일고개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바리덕이를 묻고 삼일제를 지내러 올라가다가 서인대사를 만났다. 

“할머니 어디 가시오?” 

“일곱째 바리덕이 제(祭) 지내러 가오.” 

“할머니 일곱째 바리데기 죽어 생불이 돼 나와 앉아 할머니 오면 잡아먹겠다고 합디다.”

“대사님 그러면 챙겨 가지고 온 제물은 다 잡수시오.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제일이지. 내 어찌 죽겠소.” 

“할머니 우리 절에서 윤동짓달 스무 초하룻날에 재(齋)를 하니 구경 오겠소?”

그 말을 듣고 할머니는 윤동짓달을 찾아다니다가 삼년 묵은 보리그릇에 엎어져 죽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살던 함흥의 집, 함흥본궁.

다른 지역 <바리공주>는 이 대목에서 아버지 혹은 부모를 살린 다음 궁궐로 돌아간다. 그다음엔 큰 공을 쌓은 바리공주에 대한 포상 장면이 이어진다. 그런데 함흥 <바리공주>는 전혀 다르다. 죽음에서 돌아와 ‘바리덕이’와 귀가한 어머니 덕주아 부인은 딸들을 모조리 살해한다. 아귀다툼을 하던 여섯 딸을 모아 여러 ‘살’을 주는데, 다 죽음에 이르는 나쁜 살들이다. 살의 기운이 얼마나 강했는지 생명의 은인인 막내딸마저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것은 요즘 종종 발생하는 신세비관형 자식살해담이 아니다.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아 같은 배신한 남편을 징치하는 복수형 자식살해담도 아니다. 바리공주의 ‘숭고한 희생’마저 처참하게 만드는 아주 괴상한 복수극이다.

더 괴상한 것은 그다음이다. 심정적 부채를 지닌 모친은 막내딸의 망혼을 위로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한데 뜬금없이 서인대사, 곧 스님이 나타나 거짓 정보를 흘린다. 막내딸의 원혼이 복수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것. 결국 제물은 중이 차지한다. 서인대사는 다시 ‘윤동짓달 스무 초하룻날의 재’라는 2차 거짓 정보를 흘린다. 무당이 ‘윤동짓달 초하루’를 잘못 구연한 것인데, 윤동짓달은 아주 드물게 오는 달이다. 그래서 ‘윤동짓달 초하루에 갚겠다’며 돈을 빌리면 안 갚겠다는 말이 된다. 부활한 모친은 대사한테 사기를 당해 오지 않는 날을 찾아다니다가 비명횡사한 셈이다. 막내딸의 ‘숭고한 희생’을 무위로 돌리는 허망한 종말이다. 함흥 <바리공주>는 여기서 끝난다.

함흥 <바리공주>는 해석이 난감한 작품이다. 그래서 해석의 열쇠를 잘 깎아야 한다. 열쇠 가운데 하나는 ‘서인대사의 형상’이다. 이 사기꾼 중의 이미지는 함흥의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석가님’의 모습(연재 10회 참조)과 닮은꼴이다. 함흥 지역의 무속은 불교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이다. 중한테 속아 불사(佛事)를 쫓아다니다가는 망한다는 경고가 숨어 있다. 불교의 처지에서 보면 어불성설이겠지만 함흥의 신화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또 하나의 열쇠는 ‘죽음’이다. 다른 <바리공주>의 경우 부모는 살아나고, 저승행을 거부한 언니와 사위들도 용서를 받는다. 아들 못 얻은 부왕의 한(恨)도 바리가 낳은 외손자들을 통해 풀린다. 이승에서의 화해, 행복한 결말을 도모한다. 그러나 함흥 <바리공주>는 화해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죽음에 몰두한다. 모녀 사이의 갈등은 지속되고, 결과는 비극이다. 

이 비극을 풀고 거두는 곳이 이승이 아니라 저승이라는 인식이 함흥 <바리공주>를 점거하고 있다. 말랑말랑한 이승의 해피엔딩을 말하지 않는다. 죽음을 직시하는 현실주의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무녀 지금섬은 “옥황에 올라가 아들 열둘 낳아 열두시왕을 매겨 놓고 내려왔으니 거기서 오기탈을 받고 탈을 거두소서”라는 비념을 덧붙이는 것이다. ‘오기탈’, 곧 죽음이라는 탈을 죽음을 관장하는 옥황(저승)의 열두시왕(十大王)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함흥 <바리공주>는 ‘죽음의 향연’에 들어가는 입장권이다. 

함경도 함흥·홍원 등지는 한국 신화 판도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역이다. 아니 아시아 신화의 구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꼭 풀어야 할 매듭이라 할 만한 곳이다. 조심스러운 소망이지만 평창 올림픽의 평화 무드가 현지조사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아시아 신화의 맥을 짚어 보고 싶다.

▶필자 조현설 

한국 고전문학·구비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교수(국문학)로 한국 신화를 포함한 동아시아 신화와 서사문학을 탐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2004),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2006), <마고할미신화 연구>(2013) 등이 있다. 논문으로 ‘해골, 삶과 죽음의 매개자’(2013), ‘천재지변, 그 정치적 욕망과 노모스’(2016) 등이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2072136005&code=210100&s_code=af206#csidxb5a7851b3a67209acc0d661887f2c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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