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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아우슈비츠, 그리고 트럼프의 망언/박노자
글쓴이 : 시냇물 날짜 : 2017-10-10 (화) 20:07 조회 : 1501
아우슈비츠, 그리고 트럼프의 망언
만감: 일기장 2017/10/02 00:58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92827 
제 아들의 급우들 학교 수학여행 인솔자 노릇하느라고, 제가 지금 잠깐 폴란드의 구 수도인 크라코브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어제 홀로코스트 교육차원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기념관을 가봤습니다. 정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입니다. 대량으로 학살 당한 여성들의 잘린 머리로 만든 방직물을 봤을 때에, 피해자들의 억울한 영혼들이 그 주위를 배회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 정말이지 가만히 응시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들의 한 여성 급우는 울음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맹정신으로 "그냥" 응시할 수 없는, 그런 곳이죠. 그런데 그걸 둘러보고 나서는 제가 그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인류 계급사회의 역사란 크게 봐서 각종 범죄의 역사이자 학살들의 연속인데, 왜 하필이면 여기에서 일어났던 이 학살은 우리에게 이렇게 특별하게, 등골이 오싹해지도록 와닿는 거죠?

계급사회의 역사는 전쟁사이며, 전쟁의 참화 속에서 무기를 들 수 있는 "남정", 즉 징병연령의 남성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것은 보통 역사에서 아예 특별히 애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각국의 역사 교과서들을 보면 그 수많은 "대첩"들은 애도는커녕 아예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죠. "아군"이 이겼다면 이긴 게 자랑이고, "아군"이 지더라도 잘 싸웠다고 쓰면 되니까요. 여성과 아이까지 죽임을 당하는 것은 오늘날 국제법 차원에서는 "전쟁범죄"지만, 세계전쟁사를 보면 매우 자주 일어나곤 했던 일이죠. 아예 성경 구약에서 유대인들의 가나안 땅 정복 과정에 대한 묘사부터 보더라도 일부 도시들의 주민들을 "전원몰살"하라는 야훼 신의 계시나 그런 행적에 대한 이야기가 꽤나 쓰여지죠. 전쟁이 아니더라도 각종 내부적 정변의 과정에서의 여성, 아이들의 희생은 역사 책에서 흔이 보이는 일이죠. <용의 눈물>에서 조선초기 왕씨 일족 몰살 장면을 보신 분들이 계실터인데, 이는 실록의 기록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일 뿐입니다. 그때도 여자, 아이들도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했죠. 왕당파들이 지금도 늘 미화하기 좋아하는 조선왕조의 군사 손에요. 그렇다면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범죄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과연 그 규모, 즉 1백30만 명을 5년간에 죽인 "기록"인가요?

규모라든지 특정 민족집단을 "모조리 다 전멸"시키려는 구상도 그렇지만, 가장 끔찍하게 느껴지는 건 산업화, 기계화된 살육입니다. 종래의 전쟁에서는 군인이 자신이 죽이는 "적"을 바로 직면하게 돼 있었기에 늘 죽임에 따르는 양심의 가책에 노출돼 있는 나머지 적국의 군인, 주민이라도 봐주고 살릴 수도 있었고, 또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는 길들도 보통 있었습니다. 한데 히틀러의 악몽의 "제3의 제국"에서는 살육은 철도의 기차처럼 피할 수 없는 만큼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피점령지역 유대인이라면 거의 빠짐없이 "유대인 등록" 당하고 게토로 강제 이주 당하고, 그다음에 결국 아우슈비츠 같은 죽임의 공장으로 옮겨지고...피해자들은 인간이 아닌 "기계"를, 즉 기계처럼 움직이는 "완벽한" 근대적 관료제를 직면해야 했어요. 학살도 칼도 총도 아닌 "단추누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독가스가 살포되고 사람들이 10분내로 사물로 화하고 마는 거죠. 기계화, 자동화된 도살장과 다를 게 없다 싶이 했는제, 유대인들이 "인간이 아닌 가축 수준의 존재"라고 교육 받은 나치 친위대 대원들은 이런 "도살 노동"을 마치고서 커피를 마시며 와그너 음악을 즐겨 듣곤 했습니다. 맹자는 인간에게 선심에 내재돼 있다고 했지만, 이들은 정말이지 대다수는 자신들이 어떤 죄업을 짓는다고 인식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아우슈비츠는 인제 제 아들의 학급처럼 구주 각국의 젊은이들이 와서 "홀로코스트 교육"을 받는 성소가 됐습니다. 그런데 과연 홀로코스트에 대한 단죄와 이런 교육의 실시는 세계를 바꾸었는가요? 새로운 홀로코스트를 예방했는가요? 저는 솔직히 지난 번 트럼프의 유엔 기조연설을 뉴스에서 들었을 때에 그걸 심하게 의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트럼프는 유사시에 북조선을 "전멸"시키겠다고 공갈했죠. "전멸"이란 북조선 총인구 2천5백만 명을 전부 내지 다수, 그렇지 않으면 상당수를 죽이고 그 나라를 아주 없앤다는 걸 뜻합니다. 트럼프의 일부 관료들은 아예 "선제핵공격"이야기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이북지역에서는 규모로만 봐도 유대인 홀로코스트보다 몇배 더 큰 홀로코스트를 일으키겠다고 백주대낮에 떠드는 셈이 되죠? 실은 "기계화된 살육"이라는 차원에서도 아우슈비츠와 전혀 다를 게 없는 짓거리를 하겠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누군가가 단추를 누르고 미사일과 폭탄들이 북의 도시 위에 떨어지고 순식간에 평양, 개성, 원산 등지에서 수백만명이 재로 화하고...아우슈비츠가 있고 나서 그런 망언을 할 수 있다면, 비극적이게도 홀로코스트는 인류에게 "전환점"이 되지 못하고 만 거죠.

홀로코스트란 한 번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는 근대후기의 어떤 "상태"를 뜻하는 용어인 듯합니다. 기계화된, 자동화된 학살은 근대후기 자본주의 국가가 취할 수 있는 하나의 행동모드죠. 언제든지 취할 수 있는, 그런 행동패턴이고요. 우리가 막지 않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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