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린이 걸어야 하는그 길

행 7:55-60; 벧전 2:2-10; 요 14:1-14

 

오늘로 저와 여러분의 이 땅에서의 만남이 끝은 아니지만그러나 오늘 전하는 하늘뜻펴기가 담임목사로서 전하는 마지막 하늘뜻펴기가 되겠습니다향린교회에서의 저의 시무 기간인 14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겠지만저에게는 처음 이 자리에 섰을 때가 엊그제인 것처럼 매우 짧은 시간으로 느껴집니다그러나 갓난아이였던 이들이 벌써 의젓한 한 성인으로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14년이 주는 세월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촛불목회]

 

2003년 창립 50주년에 맞추어 5월 초 24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을 하였습니다만공식 취임식은 6월 둘째주일인 8일에 있었습니다그리고 그 주 금요일 13일 저녁 저는 고 홍근수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교우들과 함께 시청 앞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습니다이 날은 친구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걷던 13살의 효순 미선 두 여중생이 미장갑차에 압사당한지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시청 앞 광장을 가득 매운 촛불은 효순미선이의 추모를 넘어 미군을 규탄하는 반미 구호가 공개적으로 외쳐지던 촛불이었습니다.

 

당시 막 출발한 노무현정권은 이 사고에 책임이 있는 두 미군을 한국 법정에 세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주한미군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를 거부하고 그해 11월 자신들의 군사법정에서 무죄를 선고하였고 살인을 저질렀던 두 미군은 미국으로 출국하고 말았습니다이로 인해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고그해 겨울 네티즌들에 의한 자발적인 시위 촛불이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계속 켜지고 있다가 1주기를 맞아 대규모 촛불시위가 있었던 것인데저의 향린에서의 첫 주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4년이 지나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진 촛불혁명에 의해 박근혜정권이 무너지고 지난 주 문재인정권이 시작되었습니다이 광화문 촛불은 짧게 보면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들의 기억에서 시작하고 있고길게 보면 효순미순을 기억하는 촛불에 그 기원이 있습니다효순미선 촛불에 이어 노무현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이명박정권 초기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둘러싸고 대규모 촛불 집회가 수개월 걸쳐 일어났고이어 용산참사재능기업쌍용자동차 등의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작년의 백남기농민의 경찰폭력에 의한 사망 등 크고 작은 여러 사회 이슈들을 통해 촛불시위는 계속 이어져 왔었습니다세계가 놀란 촛불혁명의 배경에는 이런 수많은 희생과 저항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촛불은 본래 70년대 박정희군사독재 시절 인권이 마구 짓밟히던 때에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의 목요기도회를 통해 처음 켜지기 시작했던 것인데김영삼 김대중 민주정권을 거치면서 이 촛불은 중단되었습니다이에 몇몇의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투쟁과 용산참사를 기점으로 이를 이어가는 목요촛불거리기도회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8년째 지속하고 있습니다지난 주 목요일에도 광화문광장 미대사관 앞에 30여명의 기독인들이 모여 사드배치 반대를 주창하는 촛불을 들었습니다저는 지난 14년 동안 거의 매주 많을 때는 서너 번의 촛불을 들어왔습니다그러고 보면 저의 향린에서의 14년 목회는 촛불거리목회라 일컫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중신학과 갈릴리 현장]

 

70년대 박정희독재정권에 폭력적인 억압에 맞선 민중신학의 핵심 단어는 갈릴리 현장이었고안병무서남동문익환목사님들의 가르침을 깊이 받은 저에게 있어서도 교회목회란 성장목회가 아닌 현장목회 곧 예수의 갈릴리 하느님 나라 운동의 오늘 여기에서의 재현이었습니다그래 건물로서의 성전 벽을 허물고 아픈 자들이 있는 사건의 현장에서의 부활의 몸으로서의 주님과 함께 하는 주일예배를 시도하였는데이 또한 자연스럽게 현장예배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미군들의 전쟁기지 확장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평택의 대추리대포가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파주 무건리사드배치로 국제갈등문제로 비화한 성주 소성리 현장을 비롯하여 부동산개발 자본주의로 인해 희생당한 용산과 집단판자촌 구룡마을 화재 현장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종각과 광화문 현장을 우리는 찾았습니다.

 

이는 대표적인 하나의 예에 불과한 것이고 여러분께서는 지금도 수많은 노동현장과 세월호를 비롯한 참사 현장 곳곳에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오고 있습니다지금 이 자리에는 현장에서 나부끼는 청년예수가 새겨진 향린의 깃발을 보고 찾아오신 분들도 여러분 계십니다그러다 보니 현장에 함께 할 수 없는 나이 드신 교우님들이나 신앙 성격상 거리 촛불이 잘 맞지 않는 교우들께서는 이러한 현장목회에 약간의 소외감을 느끼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그런데 이러한 현장목회는 제가 스스로 원했던 일은 아니었고이 시대가 그렇게 저와 향린교회를 불러냈던 것이고이 길은 전임 홍근수목사님께서 걸어가신 길이었고더 올라가보면 안병무 홍창의선생님을 비롯한 창립자들의 뜻이 그러했던 것입니다.

 

[창립정신과 현장목회]

 

향린 40년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향린교회를 창립한 이들 젊은이들은 누구였던가그들 가운데는 어렸을 때부터 우정의 줄로 연결되어 있는 친구들도 있었고대학시절에 만나 신앙운동을 함께 하던 동지들도 있었다그들은 새로운 이상 사회의 실현을 꿈꾸면서작은 규모였지만 목적의식적으로 하나의 생활 공동체를 이루어 실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순한 신앙과 가난한 삶을 추구했고천막을 만드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교했던 사도 바울을 그리스도인의 이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곧 일상의 삶 자체가 하느님 나라 선교의 현장임을 고백한 것인데이를 당시에는 입체적 선교오늘은 사회선교라는 말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향린공동체가 처음 출생의 울음을 터뜨린 날은 1953년 5월 17일이었습니다본래는 몇 명의 동지들이 더 있었지만공교롭게도 당일에는 딱 12명이 첫 예배를 드렸고이 날은 사백만 명이라는 당시 우리나라 총 인구의 10분지 1에 해당하는 사람과 수십만에 달하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꽃다운 청년들이 이유도 모르는 채 서로가 쏘는 총탄에 맞아 쓰러져간 한국전쟁이 막바지를 향해가던 때였습니다.

 

그들의 눈은 전쟁과 죽음의 세력에 대항하는 새로운 생명과 희망의 신앙운동을 전개할 야심으로 불타고 있었다오늘날처럼 한국전쟁의 성격을 한반도주변정세와 민족 내부적 갈등에 비추어 파악하고 있지 못했던 때에아니 그 전쟁의 성격 규명은커녕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을 때에 그들은 이 전쟁을 민족의 고난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그리고 전쟁의 와중에서 기성 교회가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었다그래서 그들은 민족의 위기에 둔감한 교회민족의 고난을 외면하는 교회를 새롭게 갱신하려는 열정을 갖고 있었다.” 향린교회는 그 출발부터 고난에 찬 민족사의 한 복판에서 출생의 첫 울음을 터트렸던 것이고 현장참여 목회는 하나의 운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516, 517, 518]

 

몇 년 전 저는 창립기념주일을 맞아 516, 517, 518 이라는 제목으로 하늘뜻펴기를 했었습니다년도는 각기 다르지만이 세 날을 하나로 엮어내는 하나의 단어는 혁명입니다올해로 56주년을 맞는 5월 16일은 일본육사출신 매국노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로 419로 되찾은 민주정권을 탈취한 암흑의 날이자 폭력 혁명의 날입니다올해로 37주년을 맞는 5월 18일은 광주민중항쟁의 날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민이 역사의 주인임을 증명한 날입니다이 두 날 사이에 낀 5월 17일은 향린교회 창립의 날로 신앙 혁명의 날입니다세상 시간인 크로노스의 역사로 보면 이 세 날 사이에 연관성은 전연 없습니다그러나 하느님의 시간인 카이로스의 역사로 보면 516이라는 깊은 암흑의 골짜기에서 518이라는 높은 산봉우리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517이라는 거친 산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데여기에 민족선교 혹은 사회선교라는 향린교회의 역할이 상징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나름의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두환군사정권의 629항복선언을 이끌어낸 6월 민주항쟁의 중심 역할을 했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5월 27일 향린교회에서 결성되었다는 것도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당시 이 결성 모임을 비밀리에 주도했던 오충일목사님의 증언에 따르면명동성당과 성공회성당종로 YMCA 등등의 주요 거점지에는 이미 경찰들이 그 길목을 지키고 있어 그렇지 않았던 향린교회가 선택되었다는 우연성을 말합니다만진짜 이유는 그해 1월 시대의 예언자로 불리셨던 홍근수목사님의 부임이 있었던 것이고두 번째는 약도를 알려주어도 잘 찾지 못하는 지리적 불리함이 오히려 비밀결사체의 유리한 요인으로 주어져 있었던 것입니다오늘 베드로전서의 말씀과 같이 집 짓는 자들 다른 말로 하면 세상 권력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돌이 하느님 나라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하느님의 역사 곧 신앙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혁명(革命)이란 무엇인가?]

 

혁명이란 무엇인가혁명은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 구조가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어느 한부분만 달라지는 것이 아닌 전체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한자어 혁()이 동물의 가죽을 삶고 두들겨 털을 뽑아내면 완전히 그 용도가 달라지듯이겉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속의 구조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정치입니다예전에는 왕조가 달라지면 성이 바뀌었기에 역성(易姓혁명이라 불렀지만요즘은 대통령이 바뀐다 해도 정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 쉽지 않아 혁명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상당한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 하에서는 한 사람의 열정과 의지에 따라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뜻이 있다면 혁명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한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어떻게 보면 이전의 두 정권이 워낙 개떡같은 사이비/문고리 비리 정치를 하였기에 문재인대통령이 기본 원칙만 제대로 지켜간다고 한다면 정치혁명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일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68세대와 386세대]

 

지난 주 세계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주목할만한 두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그건 프랑스에서 39세의 정치 신인 마크롱이 보수 후보 루펜을 큰 차이로 꺾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일이며남한에서는 진보를 표방한 인권변호사 출신의 문재인씨의 압도적인 승리입니다물론 저는 진보를 표방한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이 중도를 표방한 마크롱의 당선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민중혁명이라는 관점에서 남한과 프랑스는 일면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프랑스는 1789년의 민중혁명을 통해 불완전하긴 하였지만 왕정시대를 끝낸 바가 있고, 1894년 조선은 외세의 간섭으로 인해 자체의 힘으로 완성하지는 못했지만동학민중혁명을 통해 왕정이 끝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프랑스는 1968년에 일어난 시민혁명을 통해 68세대가 등장하였고남한 또한 1987년 민중혁명을 통해 386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하였습니다물론 프랑스는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선포했던 곳이고 지금도 실제로 공산당이 존재하고 한때는 정당연합을 통해 국가권력을 실제로 행사했던 역사가 있는 반면 우리는 공산당은커녕 통일의 통자만 외쳐도 종북으로 몰리는 극단적인 정보정치가 판을 치고 있어 그 정치 지형이 판이하게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게다가 프랑스는 히틀러독일지배에 부역했던 민족반역자들을 과감히 처단했던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한 차이도 분명히 있습니다그러나 20년의 세월의 간격을 갖고 있는 프랑스의 68세대와 남한의 386세대가 오늘의 세계인을 향해 던지는 공통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68세대들은 정치 민주주의를 넘어 생활 속의 민주주의 곧 일체의 권위를 거부하는 평등주의를 제창했습니다저는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386세대 이전과 이후 세대를 구분하는 가장 큰 획은 권위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합니다. 386의 윗세대 곧 홍준표후보를 찍은 세대는 단순한 보수 혹은 나이든 세대가 아니라 국가 혹은 관료주의라는 권위에 복종하며 살아온 세대입니다말하자면 노예로 살다가 해방을 받아 가나안이라는 새 땅을 향해 엑소도스를 했건만 광야의 히브리인들마냥 조금만 어려움에 처하면 애굽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하며 불평불만을 터뜨리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여전히 노예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정신곧 국가의 권력이 민 곧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진정한 권위가 자신 속에 있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한기총 소속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홍준표후보 지지를 표방했는데그건 그들의 신앙이 보수라서 그랬다기 보다는 그들이 실로 두려워 했던 것은 교인들이 깨어나 목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었습니다국가와 정부가 다르고 하느님과 목사가 다른데이들은 정권에 반대하는 것은 곧 국가에 대한 반역행위로 보고목사에 반대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부정하는 불신앙으로 보는 것입니다홍준표후보를 제외한 네 후보의 정치적 견해는 달랐지만탈권위라는 점에서 네 후보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었습니다그래서 다음 대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는 5만 명의 청소년이 참여한 모의대선투표에서 홍준표후보가 2%대 꼴찌에 머문 이유인 것입니다오늘을 가리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말하는데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특징은 탈권위입니다.

 

두 번째 68세대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세대였습니다초기 산업 자본주의와 달리 후기 시장자본주의는 여론조작과 TV, 신문을 통해 인간의 구매 욕망을 자극함으로 보다 쉽게 인간을 지배하여 왔는데이러한 소비욕망의 허구성을 폭로한 것입니다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더 많이 소비하라그러면 더 빨리 죽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구호에 대항하여 "일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쳤고성공주의에 매몰된 가짜 열정을 폭로하기 위해 "열정을 해방하라"는 구호를 외쳤고 대안적 세계를 꿈꾸면서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금지를 금지하라" "파괴는 창조의 열정이다" "사랑할수록 더 많이 혁명한다" "굶주림은 참아도 권태는 못 참는다" "선거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