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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고문과 옥살이, 재심과 무죄... 19세 소년의 5.18 이후 삶
글쓴이 : 시냇물  (121.♡.55.11) 날짜 : 2019-10-17 (목) 22:01 조회 : 45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포고령 위반으로 고초를 겪은 박영식씨의 1심(전교사계엄보통군법회의) 판결문 일부.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포고령 위반으로 고초를 겪은 박영식씨의 1심(전투교육사령부계엄보통군법회의) 판결문 일부.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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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시력이 안 좋은데 일단 안경을 벗겨버리니 정신이 없는 거죠. 그렇게 해놓고 서너 명이 돌아가면서 갈겨버리니까 사람 혼이 나가버려요. 얼굴이고 가슴이고 어디고 가리지 않았죠. 주먹으로 때렸다가 손바닥으로 후려쳤다가 발로도 찍어버리고, 나중엔 빠따(몽둥이)로도 매질을 하는데..."

1961년생인 박영식씨는 만 19세이던 1980년 5월을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16일 <오마이뉴스>를 만난 그는 고통의 시간이었던 당시 상황을 조심스레 풀어냈다.

전북 전주의 전북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씨는 그해 5월 초부터 "비상계엄 해제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학교 인근에서 시위를 벌였다. 전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던 때였다. 위기를 느낀 신군부는 5월 17일에서 18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휴교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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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때문에 시위는 더 거세졌고, 그 와중에 박씨는 '광주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그럼에도 광주를 고립 시켜 정보가 차단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는 시위를 함께하던 동료들과 유인물을 제작해 전주 곳곳에 뿌리기로 결심했다.

박씨와 동료들은 5월 23일 낮 12시 전주의 모처에 모여 '시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의 글'이란 제목의 유인물 2000여 장을 만들었고, 전주 곳곳으로 흩어져 5월 24일 오전 4시 3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유인물을 배포했다. 배포 직후인 오전 7시에도 광주에서 만든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이란 유인물을 전달받아 이를 또 복사해 오후 2시부터 전주 곳곳에 뿌렸다.

불심검문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포고령 위반으로 고초를 겪은 박영식씨.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포고령 위반으로 고초를 겪은 박영식씨.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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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곳곳에서 게릴라 시위를 벌이던 박씨는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리고 말았다. 박씨는 "눈앞이 캄캄해지더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5월 24일 오후 6~7시 사이에 잡힌 거예요. 소지품 중 유인물이 나와 버리니 빼도 박도 못 하는 거죠. '나도 받은 거다'라고 말했는데 통할 리가 없죠. 그렇게 전주경찰서에 끌려갔다가 며칠 뒤 보안대로 끌려갔어요. 당연히 그땐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갔죠.

제가 전주동중학교를 나왔는데 그 앞에 방죽이 있었거든요? 그 방죽을 매립해 담벼락을 치고 뭘 만들었었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거기가 보안대였더라고요. 아무튼 당시 천 같은 걸로 얼굴을 다 가리고 지프차에 실려서 어디론가 끌려갔어요."


그때부터 박씨는 무자비한 구타를 당했다. 인터뷰 내내 "나는 정당한 일을 했다"며 비교적 담담했던 그도 보안대에서의 기억을 떠올릴 땐 잠시 말문을 잇지 못했다.

"하아, 도착해 천을 벗으니 지하실이더라고요. 2~3평 정도 됐던가. 의자 두 개가 있었고 다른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갑자기 누가 들어오더니 뭘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패기 시작해요. 무조건 패는 거예요. 전기고문, 물고문, 통닭구이 이런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어쨌든 사람 혼이 나가버리더라고요.

며칠 그렇게 하면서 몇 가지를 물어보더니 다시 전주경찰서로 보내졌어요. 근데 몸도 머리도 뭔가 이상해져 버렸는지 제가 유치장에서 똥을 싸버릴 정도였어요. 그거 땜에 또 쥐어 터질까 봐 이야기도 못 하고..."


이후 박씨는 전주의 육군 35사단 헌병대를 거쳐 광주의 상무대 영창으로 옮겨졌다. 아치형의 파놉티콘 형태였던 상무대 영창은 구타와 가혹행위로 당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6시쯤 기상나팔 울리면 하루 일과가 정좌한 채 전방을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 헌병X들이 심심하면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한 명을 불러내 요란하게 까버려요. 헌병들이 들고 다니는 긴 몽둥이 그걸로요. 그리고 영창에 있는 철창에 원숭이처럼 매달리라고 그래요. 그거 못 버티면 또 까버리고. 밥도 완전 풀떼죽이에요. 한창 먹을 나이인데 양도 너무 부족했죠.

밤에 자다 보면 곳곳에서 비명소리도 들려요. 총상 입고 고문당한 사람들이 자다가 너무 아프니까 소리를 막 지르는 거예요. 영창 바로 옆에 법정이 있었는데요. 재판 때문에 한 명씩 불려 나갈 때 다 죽으러 가는 줄 알았어요. 광주에서 총 든 시민군도 있었고 그랬잖아요. 그 공포감이 컸죠."

불효
 
5.18구묘역 입구에 묻힌 '전두환 표지석' 광주광역시 망월동 구 5.18묘역 입구 바닥에는 참배객들이 밟고 갈 수 있도록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마을'이 새겨진 표지석이 묻혀 있다. 1982년 전남 담양군 방문을 기념해 세워졌던 비석으로, 광주전남 민주동지회가 비석의 일부를 가져와 묻었다.
▲  광주광역시 망월동 구 5.18묘역 입구 바닥에는 참배객들이 밟고 갈 수 있도록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마을" 표지석이 묻혀 있다. 1982년 전남 담양군 방문을 기념해 세워졌던 비석으로, 광주전남 민주동지회가 비석의 일부를 가져와 이곳에 묻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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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8월 8일 1심(전투교육사령부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포고령 위반으로 장기 10월, 단기 6월을 선고받았다(당시 만 19세였기 때문에 소년법이 적용됨). 그가 5월 24일 끌려간 후 가족을 처음 만난 건 그날이었다. "부모님 가슴에 얼마나 큰 대못이 박혔겠나"라고 말하는 박씨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부모님 앞에선 당당하려고 했죠. '아버님 어머님 걱정 마시라, 저는 올바른 일 했으니 곧 풀려날 거다'라고 말하면서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려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1년도 안 되는 시간이었잖아요. 옆에 무기징역·사형받는 분도 있었고, 목숨을 내놓고 저항하다 돌아가신 분도 있었잖아요. '법무부 시계는 거꾸로 해도 돌아간다'는 말이 저 같은 사람에겐 통했죠. 그럼에도 부모님께 불효를 끼쳤던 건 여전히 죄송스러워요."

박씨의 항소와 상소는 각각 육군고등군법회의와 대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이후 '관할관 확인 감경권(지휘관이 형량을 재량으로 감경할 수 있는 군사법체계의 제도)'으로 박씨의 형이 장기 8월, 단기 6월로 줄었다. 하지만 박씨가 최초 연행됐던 5월 24일부터 1심 선고가 내려진 8월 8일까지는 구금 일수로 인정되지 않아, 실제로 그가 수감됐던 기간은 약 11개월(1981년 4월 17일 출소)에 달했다.

"출소하니 허리가 너무 안 좋았어요. 대법원에서 형 확정되고 공주교도소로 옮겨졌는데 당시 그곳이 주로 누범들이 있는 교도소였어요. 그래서 그런지 삼청교육대 같은 교육을 받았어요. 겨울에도 팬티만 입고 목봉을 들었다니까요. 이전에 구타당한 거랑 그것까지 합해져 허리가 나가버린 거죠. 출소하니 어머님이 지네를 구해다 삶아주시고 그랬죠."

출소 후 박씨를 괴롭힌 건 망가진 몸뿐만이 아니었다.

"출소 후 학교를 서울에 있는 한양대학교로 옮겼어요. 그때도 경찰이 계속 따라다녔죠. 지금은 좀 사라졌지만 항상 쫓기는 것 같은 느낌이 몸과 마음에 남아 있어요. 더구나 복권이 됐다고 하더라도 어디 시험을 보려고 해도 소위 빨간 줄이 그어져 있으니까 잘 안 되는 거죠."

저항권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포고령 위반으로 고초를 겪은 박영식씨.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포고령 위반으로 고초를 겪은 박영식씨가 16일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받고 법정을 나와 재판 관련 문건을 바라보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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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38년이 지난 8월, 박씨는 재심청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올바른 일을 했다는 것을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지난달 10일 박씨의 재심 요청을 받아들였고, 지난 2일 진행된 공판에서 김지은 검사는 박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박씨의 선고 공판은 16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서부지법 303호(형사대법정)에서 진행됐다. 검찰이 무죄를 구형했음에도 공판 직전 법정 앞에서 만난 그는 상기된 것처럼 보였다. 각종 재판 서류가 담긴 가방을 쥔 채 그는 법정 안으로 들어섰다.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조병구 부장판사는 "고생들 많이 하셨다"라며 이같이 선고했다. 조 부장판사는 무죄를 선고한 이유를 "피고인(박씨)의 행위는 저항권의 행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12.12군사반란 등으로 국헌이 문란해진 상황이었다"라며 "피고인의 행위는 자유민주주의와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헌정질서 파괴 범죄를 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한 행위이므로 형법 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라고 강조했다.

법정을 나온 박씨는 그제야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그는 "제가 재심 최후변론에서 했던 말을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최후변론 때 제가 세 가지를 이야기했어요. 첫째, 국가적으로 5.18 정신과 가치가 제대로 정립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5.18 정신이 헌법 전문에 담기는 걸 강력히 지지합니다. 또 일부 야당과 수구 인사들의 각성을 촉구하며 제정신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이번 재심 판결문을 고인이 되신 부모님 영전에 바치고 싶습니다. 그곳에서나마 '우리 아들 올바른 일 했구나'라고 생각하시며 편히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민주와 정의와 민권을 위해 꽃잎처럼 쓰러져 간, 장렬히 산화하신 수많은 망월동의 민주 영령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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