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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5자리 우편번호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1-01-22 (토) 21:34 조회 : 3712
[여적]5자리 우편번호  
유병선 논설위원
<90210>이란 제목의 미국 인기 드라마가 있었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웬만한 미국인은 그 숫자가 캘리포니아의 부촌 베버리힐스의 집코드(ZIP code)라는 걸 안다. 4년 전엔 뉴욕에서도 집코드 논란이 일었다. 뉴욕 맨해튼의 메디스 애비뉴 60~80가에는 부자 중에서도 부자들이 몰려 살아, 이곳의 집코드 10021은 ‘미국의 최고 부촌’을 상징한다. 그런데 뉴욕시가 이 집코드를 3개로 쪼개려 하자 돈 많고 힘있는 부자 주민들이 발끈했다. 누구나 아는 숫자 5개의 최고 부자 신분증을 누구 맘대로 바꾸려느냐는 거였다.

집코드는 미국 특유의 우편번호(postal code)다. 우편번호는 폭증하는 우편물을 처리하기 위해 1962년 독일에서 처음 도입됐고 우리나라에는 1970년 7월부터 쓰였다. 미국에선 1963년 ‘우편지역 개선계획(Zone Improvement Plan, ZIP)’에 따라 미 전역을 5자리 숫자로 분류하면서 우편번호란 말 대신 집코드라 불렀다. 집코드는 이름만이 아니라 실제 쓰임도 다르다. 우편번호 그 이상인 것이다.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처럼 미국살이에 필수적인 숫자가 집코드다. 물건값을 결제할 때 집코드를 모르면 낭패를 당하기 일쑤고, 미 연방센서스국은 사회·경제 통계를 집코드별로 낼 정도다.

행정안전부가 ‘기초행정 인프라 선진화 방안’으로 2014년까지 우편번호를 현행 6자리에서 5자리로 바꾼다고 한다. 기존 3474개 읍·면·동의 행정구역을 인구·생활권 등에 따라 8~9등분해 3만여개의 ‘기초구역’으로 나누고, 여기에 5자리의 새로운 우편번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미국식 집코드로 ‘선진화’한다는 뜻이다. 이는 우편번호의 숫자만 바뀌는 게 아니다. 지금은 우편번호를 몰라도 그만이지만, 앞으론 주소지의 행정구역보다 기초구역의 숫자가 한국인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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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야 사바랭은 <미식예찬>에서 “당신이 뭘 먹는지를 말해 보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겠다”고 했다. 행안부의 선진화 방안대로라면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누군가의 집코드만 알면 그의 신분을 가늠할 수 있게 될 듯하다. 종이 편지는 우리 곁을 떠나는데 우편번호는 외려 삶을 파고드는 세태의 변화가 참 묘하다. 5자리 우편번호가 우리 모두의 삶을 구획하는 숫자가 아니 되기를, 그저 빌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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